“좌파들 애국가 못 부를 이유 있나”- 조지 오웰

“좌파들 애국가 못 부를 이유 있나”- 조지 오웰

입력 2012-05-12 00:00
업데이트 2012-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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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고세훈 지음 한길사 펴냄

“애국주의가 보수주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점유되는 것이야말로 천부당만부당. 보통 사람들은 이미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음에도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말해서 문 앞에까지 온 지지자들을 되돌려 내보내는 좌파의 멍청함이다. 보통 사람들의 “가장 평범한 정서도 이해 못 하는 계몽된 좌파 지식인”보다는 “유니언 잭을 보고 가슴 뛰는 보통 사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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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은 좌파 지식인들이 반전 평화론을 내세우며 제국주의 영국과 전체주의 독일의 싸움인 2차대전에서 노동자들이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하자 “최악(전체주의)에 대해 차악(제국주의)을 방어”해야 한다며 영국 정부에 적극 협력했다. 물론 ‘최악’을 패배시킨 뒤에는 인도를 독립시켜 ‘차악’이 스스로 제국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잊지 않았다. 한길사 제공
오웰은 좌파 지식인들이 반전 평화론을 내세우며 제국주의 영국과 전체주의 독일의 싸움인 2차대전에서 노동자들이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하자 “최악(전체주의)에 대해 차악(제국주의)을 방어”해야 한다며 영국 정부에 적극 협력했다. 물론 ‘최악’을 패배시킨 뒤에는 인도를 독립시켜 ‘차악’이 스스로 제국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잊지 않았다.
한길사 제공
‘존 메이너드 케인스’(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번역 등을 통해 영국 정치 경제사에 대한 수준 높은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 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교수. 두 사람을 더 다루고 싶다 했다. ‘동물농장’과 ‘1984’로 유명한 세계적인 작가 조지 오웰(1903~1950), 그리고 우리에게 낯설지만 영국 노동당의 핵심 이론가인 리처드 토니(1880~1962)다. 케인스가 현대 세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면 오늘날 한국의 현실에서 이 두 명의 삶은 참고할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그 가운데 ‘조지 오웰-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한길사 펴냄)가 먼저 나왔다. 타이밍도 기막히다. 진보 논쟁이 한창이라서다.

오웰은 평생 외롭고 가난하게 살았다. “최초의 상업적 성공을 안겨 준 ‘동물농장’의 인세가 밀려들기 시작할 무렵 마지막 소설인 ‘1984’가 거둘 놀라울 성공을 미처 누리지 못한 채” 폐결핵으로 숨졌다. 외롭고 가난한 것보다 오웰을 더 괴롭힌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이해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동물농장’을 반공 우화로만 생각하는 세태에 슬퍼하기도 했다.

물론 소련을 비판한 것은 맞다. 2차대전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스탈린의 패악에 눈감고 심지어 아첨까지 하는 좌파 지식인들을 못 견뎌 했다. “거짓을 말하고 진리를 억압하는 것이 정치적 대의를 진전시키는 길이라는 사고”와 “독재 방식, 비밀경찰, 역사의 체계적 조작을, 자기 편인 한 수용할 태세를 완벽히 갖춘 상태”가 파시즘보다 더 무서운 유럽 위기의 뿌리라 봤다. “히틀러가 책을 불태웠다면 스탈린은 책을 다시 썼다.”는 엄연한 진실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오웰이 보기에 “좌파 지식인이 스탈린을 숭앙”하는 꼴은 “글래스고 빈민가 아이들이 알 카포네를 숭배”하는 것과 똑같다. 1943년 11월부터 영국 노동당 내 좌파그룹 기관지 ‘트리뷴’에 소련 공산당을 극렬하게 비판하는 칼럼을 쓰는가 하면 소련에 아첨한 지식인들에게 아예 대놓고 “한번 창녀는 영원한 창녀”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1949년에는 소련 공산당의 선전 공세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영국 외무부의 정보조사처(IRD)에다 영국 내 공산당 비밀 당원과 동조자들 35명의 명단을 넘기기도 했다.

이런 전력들 때문에 오웰은 좌파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노동계급을 동경했으나 자신의 출신 성분을 배반할 수 없어 결국 중간계층으로 되돌아갔고 그 뒤 비뚤어진 선입관으로 사회주의를 비난한 배신자로 취급받았다. 그의 생각을 이해해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받쳐주지 않을 때면 그의 글과 책은 늘 인쇄가 미뤄지거나 거부당했다. 후대 좌파에게도 비판 대상이었다. 문화 연구로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문화 이론가 레이먼드 윌리엄스도 오웰을 비판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오웰이 ‘비판자들의 상상 이상으로 더 뿌리 깊은 신념을 지닌 사회주의자’였다고 본다. 실제 오웰은 평생 사회주의 혁명을 염원했다. 결혼 6개월 만에 ‘반(反)파쇼’를 위해 트로츠키 민병대원으로 스페인내전(1936~1939)에 참가, 목에 관통상을 입기도 했다. 전간기와 2차대전을 겪으면서 영국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나는 것이 모든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이라 믿었다. 이를 위해 오웰은 영국 노동자들이 식민지 보유로 인한 이득을 포기하고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하락하는 것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도 산업국가의 모든 좌파 정당은 실제로는 가짜”라는 질타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서구 좌파들에게 ‘노동자 국제 연대 운운하면서 잘난 척 그만하고 식민지부터 먼저 포기해 보시지.’라고 말한 것이다. 저자가 오웰을 두고 “사회주의를 국제적 맥락에서 보려 했던, 제국주의 문제를 정직하게 대면하려 했던 마지막 사회주의자”라고,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정직한 우파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이라면 오웰의 내부 고발 행위에 함부로 박수를 쳐댈 수 없을 것”이라 평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영국 전통에 뿌리 박은 사회주의’에 대한 얘기들이다. 오웰은 거창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남을 깔보는 중간 계급적 우월감이라는 최악의 흔적”을 지닌 좌파 엘리트 지식인들을 경멸했기에 노동자 스스로 결정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윤리적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이는 ‘좌파 애국주의’로 이어진다. 애국주의, 하면 벌써 좌파들은 눈꼬리가 올라간다. 그런 단어는 극우 맹동 세력, 반동분자나 쓰는 말 아니던가. 해서 애국가를 그토록 거부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웰은 “애국주의가 보수주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점유되는 것이야말로 천부당만부당”하다고 말한다. 그가 답답해한 것은 “보통 사람들은 이미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음에도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말해서 문 앞에까지 온 지지자들을 되돌려 보내는 좌파의 멍청함이다. 보통 사람들의 “가장 평범한 정서도 이해 못 하는 계몽된 좌파 지식인”보다는 “유니언 잭을 보고 가슴 뛰는 보통 사람”이 되라고 주문한다. 6장 ‘좌파 애국주의를 위하여’에 등장하는 “늙은 보수주의자의 뼈 위에 사회주의를 세울 수 있는 가능성”이란 말은 두고두고 음미해 볼 만한 묵직한 표현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붙이자면, 1949년 영국 정부에 공산당 동조자 35명의 명단을 넘긴 사건은 ‘세작질’이 아니다. 오웰은 명단만 넘긴 게 아니라 소련 공산당의 선전 선동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을 정부에 적극 추천하기도 했다. 전후 영국에서 미국과 같은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닥치지 않은 것은 오웰의 그런 세심한 배려 덕분이었다는 평가는 거기서 나온다. 이 평을 누가 했을까. 바로 크리스토퍼 히친스(1949~2011)다. 추악한 독재자들과 거래했다며 마더 테레사에게 독설을 퍼붓는 등 거칠고 직설적인 화법 때문에 여기저기서 희화화되곤 하는 바로 그 다혈질 좌파 히친스 말이다. 2만 4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2-05-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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