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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생각하면 골치 아파”…위대한 학자 다윈의 편지를 엿보다

“애들 생각하면 골치 아파”…위대한 학자 다윈의 편지를 엿보다

입력 2011-08-06 00:00
업데이트 2011-08-06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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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 서간집:기원, 진화】 찰스 다윈 지음 살림 펴냄

“형 아이가 열 명이 되었다는 것을 축하도 하지만 삼가 애도를 보내. 우리는 아이가 일곱이야. 아들이 다섯인데, 우리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아들 하나가 딸 셋 키우는 것만큼 어렵다는 거였어. 그러니 우리는 아이들 열일곱을 키우는 셈이야. 아이들이 뭐 해먹고 살지를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 세상에 희망이라곤 없어 보이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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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 초상화
찰스 다윈 초상화
이상은 찰스 다윈(1809~1882)이 1852년 성직자였던 육촌 폭스 윌리엄 다윈에게 보낸 편지다. 요즘 아버지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고민을 했던 다윈은 자연 선택에 기반을 둔 진화론을 확립, 인류가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을 변화시킨 지성사의 몇 안 되는 거인으로 평가받는다.

‘찰스 다윈 서간집: 기원, 진화’(전 2권, 김학영 옮김, 살림 펴냄)는 평생 2000명이 넘는 사람과 수만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다윈의 편지 가운데 그의 내면의 삶을 알 수 있는 것을 엄선했다.

다윈은 학창 시절과 비글호를 타고 떠난 항해를 제외하면 거의 고향을 떠나지 않았던 조용한 은둔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론 하루에 열 통이나 되는 편지를 항해 동료, 친척, 동료 학자, 정원사, 사육사 등과 주고받았던 ‘소통의 달인’이었다. 당시 한 통에 1페니로 잘 확립되어 있었던 우편 제도를 다윈은 적절하게 활용했던 셈. 요즘 세상으로 오면 다윈은 소설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다.



다윈의 삶에 대해서는 공통으로 떠오르는 질문들이 몇 가지 있다. 신학생 출신으로 유물론적 진화론의 주창자가 된 다윈은 자신의 종교적 전환에 대해 고뇌하는 인물이었을까, 아니면 단호한 개종자였을까. 자연 선택의 아이디어를 발견한 후 ‘종의 기원’ 출간까지 20년이 걸린 것은 그가 우유부단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평처럼 다윈은 친구와 동료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지키고 주장을 방어했던 교묘한 책략가에 더 가까운 인물이었을까.

우선 종교적 문제부터 편지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면, 다윈은 “선생께서 제게 ‘인간’에 대해서도 논할 것인지 묻습니다만, 수많은 편견에 둘러싸인 그 문제는 피하고 싶습니다. 다만, 자연 학자에게 인간은 가장 흥미로운 주제라는 점은 온전히 인정합니다.”라고 자연선택 이론을 독자적으로 정립했던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에게 1857년 답장을 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 출간 이후에 “‘내 책이 다소 이단적이라기보다 불가피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았고 ‘창세기’ 따위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사실들만을 제시했고 그 사실에서 매우 정당한 결론을 이끌어 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낫겠습니까?”라고 친구와 상의하기도 한다.

다윈은 평생 병마에 시달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각종 통증이었는데 면역 체계 이상으로 다양한 알레르기 증상에 시달렸다는 가설이 있다. 8살에 어머니를 잃은 탓에 다윈의 심리가 불안했다는 가설도 있고, 최근에는 그가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아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다윈은 식물의 수정에 관한 연구에 37년, 난초에 관한 연구에 32년, 범생설에 관한 유전학 연구에 27년을 보낼 정도로 오직 연구에 완벽을 기했을 뿐, ‘종의 기원’ 출간에 우유부단했던 것은 아니라고 ‘찰스 다윈 서간집’의 감수를 맡은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설명했다.

게다가 다윈은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고, 부인 에마는 유명한 도자기 제조업체인 웨지우드 집안 출신이어서 요즘 학자들처럼 정규직을 갖고자 논문 찍어내는 기계가 될 필요도 없었다.

‘종의 기원’이 완성되기 전에 다윈이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로부터 자기의 학설과 똑같은 취지의 논문을 받은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다윈은 친구의 도움으로 리네 학회에서 윌리스와 함께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다윈은 경쟁자에게 선점의 명예를 빼앗길까 신경 곤두선 모습을 드러내곤 곧 후회하기도 한다.

다윈은 1859년 윌리스에게 “선생의 생각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제가 선생의 이론을 읽고 나서 바꾼 글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믿으셔도 좋습니다.”란 편지를 보낸다. 연대 순으로 정리된 다윈의 편지들은 흥미롭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 편지는 위대한 학자의 지적 여정의 기록이자 한 편의 생생한 드라마다. 각 권 2만 5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011-08-0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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