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퇴직자·대학생… “삭막한 삶에 청량제 됐죠”

주부·퇴직자·대학생… “삭막한 삶에 청량제 됐죠”

조희선 기자
조희선 기자
입력 2017-11-29 22:24
수정 2017-11-2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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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달 2~3일 ‘6호실’ ‘리어왕’ 공연… 서울시극단 ‘시민연극교실’ 가 보니

“병원장님, 허공 쳐다보지 마세요. 그럴 필요가 없는 장면입니다. 비서님은 좀더 자신 있게 대사 하시고요. 극이 3분의1 정도 지나서야 드라마 맛이 느껴져요. 그전까지는 연기가 불분명하고 정체를 알기 힘들어요. 각자 조금만 더 분발해 주시고요, 강사님들은 장면별로 1대1 연기 지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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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연습실은 겨울 추위도 아랑곳 않을 정도로 열기로 가득했다. 서울시극단이 운영하는 시민연극교실의 9기 시민 배우들이 새달 2~3일 진짜 ‘데뷔 무대’를 앞두고 연극 ‘6호실’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작품으로 정신병원 의사가 그 병원의 환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지난 27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연습실은 겨울 추위도 아랑곳 않을 정도로 열기로 가득했다. 서울시극단이 운영하는 시민연극교실의 9기 시민 배우들이 새달 2~3일 진짜 ‘데뷔 무대’를 앞두고 연극 ‘6호실’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작품으로 정신병원 의사가 그 병원의 환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직장인들이 귀갓길 발걸음을 재촉하던 지난 27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3층 연습실은 열기로 가득했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연극 ‘6호실’ 리허설이 막 끝난 상황. 연출을 맡은 서울시극단 단원 김신기(47)씨의 칼 같은 지적이 어김없이 날아들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이들은 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인이다. 서울시극단이 200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시민연극교실 9기 월요일반 멤버들이다.

지난 7월부터 열린 시민연극교실에는 이들을 포함해 일반인 32명이 참여하고 있다. 월요일반 16명은 ‘6호실’을, 목요일반 16명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5개월간 연습해 왔다. 새달 2~3일, 단 이틀이지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진짜 ‘데뷔 무대’를 앞두고 있어서다. 막바지 준비에 여념이 없는 시민 배우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어려 있었다.

매주 평일 하루 저녁 시간을 연습에 할애한 이들은 은행원, 주부, 사업가, 프리랜서, 사회복지사, 정년퇴직자, 대학생 등 면면도 다양하다. 23살 막내부터 64살 최고 연장자까지 나이도, 성별도, 살아온 궤적도 제각각이지만 무대를 향한 열정과 새로운 삶에 대한 소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나의 삶, 나의 바람을 무대로’라는 올해 시민연극교실의 주제답게 이들은 연극에서 삶의 에너지를 되찾는 계기를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고등학교 연극반 활동 이후 20여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은행원 최은주(37)씨는 유독 감회가 남달라 보였다. 최씨는 “365일 웃고 있어야 하는 은행원으로 살다 보니 가슴 한켠에 묻어 둔 감정들을 해소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연극을 하면서 긍정적으로 풀 수 있었다”며 “인기 스타가 아니어도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게 만드는 에너지를 스스로 끌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단체 생활에 참여하게 됐다는 대학생 정진호(24)씨는 “누가 보면 예의 없고 이기적이라고 할 만큼 나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연극 연습을 하면서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 멋있는 그림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새로운 도전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장년층에게 연극은 ‘청량제’가 됐다. 지난 6월 정년퇴직한 김문수(56)씨는 삶의 활력을 되찾고자 연극교실에 지원했다. 그는 “금융계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삶이 삭막했는데 지금은 그 반대”라면서 “막연하게 동경해 왔던 연극 무대에 서려고 사람들과 어울려 연습하는 과정 자체가 보람이자 활력소”라고 귀띔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조영준(56)씨 역시 “출판업계가 불황인 데다 지난해 여러 사회적인 이슈로 마음이 지쳐 있었는데 연극이 자존감은 물론 꺾인 의욕도 되살려 줬다”고 말했다.

이들의 과감한 도전과 무대에 대한 열정은 연기를 가르치는 서울시극단 단원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된다. 첫 시작 때부터 참여한 김신기씨는 “처음엔 대본 읽는 것조차 힘들어하지만 막상 연기를 시작하면 (일반인들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열정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며 “이분들을 보면 지난 20여년간 연기를 하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무대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 3년째 보조 강사로 참여하고 있는 서울시극단 연수단원 박진호(30)씨도 “어머니, 아버지뻘 되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서투르지만 인생이 묻어나는 연기를 보고 있자면 전문 배우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서 “삶과 연극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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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7-11-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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