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줄리 & 줄리아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줄리 & 줄리아

입력 2009-12-08 12:00
수정 2009-12-0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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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다른 두 여인의 유쾌한 쿠킹 스토리

다른 시공간을 사는 두 미국여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1950년대 프랑스가 배경인 부분은 전설적인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가 유명해지기 직전까지를 다룬다. 줄리아는 외교관인 남편과 함께 전후의 프랑스에 도착한다. 쾌활한 성격으로 무뚝뚝한 프랑스사회를 헤쳐 나가던 그녀는 좋아하는 프랑스요리를 직접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뚝심으로 명문 요리학교를 마친 데 이어 요리책을 쓰느라 8년여를 보낸다.

2002년, 뉴욕 퀸즈 부분의 주인공은 줄리 파웰이다. 직장과 가정에서 바삐 지내던 그녀는 생활의 활력과 자긍심 고취를 위해 블로그를 운영하기로 한다. 줄리아가 쓴 요리책의 524개 레시피를 1년에 걸쳐 도전하겠다는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생활과 요리와 글쓰기의 병행이 점점 버거운 짐으로 다가온다.

‘줄리 & 줄리아’는 할리우드의 대표적 여성감독인 노라 에프론의 부활을 알린 작품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비롯한 유명 영화의 각본가로 주가를 올리던 그녀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마이클’ ‘유브 갓 메일’ 등을 직접 연출하면서 화려한 1990년대를 누렸다.

이후 로맨틱 코미디를 벗어나려다 고배를 마신 에프론은 ‘줄리 & 줄리아’를 통해 전공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마음 한쪽이 허전한 사람 곁으로 누군가를 세우는 데 자신만큼 뛰어난 사람은 드물다는 걸 재확인했다. 에른스트 루비치의 고전 ‘모퉁이 가게’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유브 갓 메일’을 만들었을 때처럼, 에프론은 요리라는 보편적 언어를 매개로 생면부지인 두 사람의 인연을 엮어놓는다.

요리의 비중이 높은 영화지만 극중 요리 자체의 유혹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당연한 결과다. 에프론은 요리와 맛의 표현보다 두 여자가 맞는 전환점에 더 강세를 두었기 때문. ‘바베트의 만찬’ ‘담포포’ 같은 영화의 그윽한 음식 내음과 요리의 찬미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게다가 두 인물의 공감대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펑하고 폭발하는 순간도 부족한 편이어서, 클라이맥스 없는 심심한 코스요리를 먹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리 & 줄리아’의 가치를 부정할 순 없다. 좋은 음식이 아닌 맛있는 음식, 음식을 같이 나눌 때의 온정, 손때가 묻어 있는 옛 부엌의 향수는 ‘줄리 & 줄리아’를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영화로 기억되도록 만든다.

줄리 역의 에이미 애덤스는 근래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에프론의 영화에도 잘 어울리는데, 귀여운 외모와 깜찍한 연기는 에프론 영화의 단골배우였던 맥 라이언의 현재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메릴 스트립을 상대역으로 두면서 그녀의 연기는 빛을 잃었다.

스트립이 연기 잘하는 배우로 평가받은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즘 그녀는 연기자로서의 어떤 한계를 시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엔 실존했던 거대한 체격의 요리사 역을 맡아 프랑스사람도 울고 갈 정도의 거창한 표현력과 풍성한 유머를 선보였다. 경력 가운데 최고의 연기 여부와 상관없이, 스트립은 잊지 못할 캐릭터를 또 한 번 완성했다. ‘줄리 & 줄리아’의 성공은 그녀의 연기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영화평론가
2009-12-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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