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생활 20년만에 첫 주연… 4일 개봉 영화 ‘물 좀 주소’의 이두일

연기생활 20년만에 첫 주연… 4일 개봉 영화 ‘물 좀 주소’의 이두일

입력 2009-06-02 00:00
수정 2009-06-02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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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엔딩 크레디트에 가장 먼저 이름이 걸릴 일이 생겼다. 연기자가 된 지 20여년 만에 처음이다. 그렇다고 해서 큰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영화 주연으로서 소구력이 있을까 고민했다. 게다가 주어진 역할도 굴레처럼 따라 다니는 소시민 캐릭터. 다른 사람을 추천하고 다른 역할을 달라고 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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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일
이두일
그러나 홍현기 감독의 고집이 셌다. 뜨거웠던 2007년 여름, 고생하며 부리나케 찍었으나 쉽사리 개봉 기회를 잡지 못했다. 여기저기 물어보며 3~4년 묵은 작품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쉽지 않겠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두일 주연의 독립영화 ‘물 좀 주소’가 4일 마침내 개봉한다. 제작비 5억원 안팎에 29회의 짧은 촬영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이두일은 “압류를 당했다가 풀린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독립영화가 주목받는 요즘 분위기 덕을 본 것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블랙코미디인 이 영화는 목 마른 하류 인생들의 이야기. 따뜻함은 있으나 궁박한 처지에 몰린 탓에 어쩔 수 없이 타인에게 상처 주고, 또 삶을 이어가는 무명씨(無名氏)들의 초상화다. 이두일이 맞춤옷처럼 그려낸 캐릭터는 우비공장 아들 구창식. 채권추심업자에게 시달리지만, 공장이 망한 뒤 채권추심업자가 된다. 모질지 못해 실적은 언제나 꼴찌. 빚을 받아내야 하는 미혼모에게 연정을 느껴 돈을 빌려주기도 한다. 돈 받으러 다니는 그 자신도 사채 때문에 심약한 초보 사채업자의 끈질긴 방문을 받는다.

어찌보면 빛이 보이지 않는 일상. 그러나 영화는 웃음을 던지는 등 어둡지만은 않다. 작품 자체가 시지프스처럼 인생이라는 커다란 돌을 끊임없이 굴려가는 무명씨들에게 보내는 박수이기 때문이다. 한대수의 노래가 제목은 물론, 곳곳에 흐르는 이 영화에서 인간 군상들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 흐르고, 넓은 곳이 있으면 잠시 쉬었다가 흐르는 물과 같다. 이두일은 “물처럼 그렇게 모든 것을 담아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서 “억지로 희망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않지만 상황이 변해도 삶에 대한 가치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채무자인 중소기업 사장의 딸 결혼식에 난입해 축의금 봉투를 뜯는 장면을 꼽았다. 실제가 아닌 연기였지만 정말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찍었다고 돌이켰다.

재미와 웃음, 그리고 가슴 뭉클함이 있는 좋은 작품이 나왔다고 했더니 “열악한 환경 속에서 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린 스태프들에게 진한 애정을 느꼈다. 배우로서 행복했다.”고 공을 돌렸다.

9년 만에 복귀한 연극 무대 작품인 ‘팬츠’에서도 빚에 쪼들린 때밀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웃는다. 다른 성격의 연기를 하고 싶지만 우리 사회에 구조적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신이 하는 역할도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게 자체 분석. 그는 “계속 소외계층이 늘어가고 있는데 산업·정치적인 전반적인 기조로 볼 때 당분간 보호 정책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주어진다면 조금 더 이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드라마 출연이 뜸하다. “요즘엔 출연료를 얼마에 맞춰줄 수 있냐고 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에서 세상이 각팍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2009-06-0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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