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문둥병에 걸려야겠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발가락이 썩어서 떨어져 나가고…. 그 다음에 떠돌다가 시 몇 편을 써야겠다.”
십리길 통학로에서 주운 ‘한하운 시초’는 중학생 고은에게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나병 시인 한하운의 시집을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밤새도록 읽은 고은은 그날로 ‘한하운처럼´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EBS 인터뷰 다큐 ‘시대의 초상’은 31일 오후 10시50분 ‘시인 고은이 말하는 시대와 역사와 개인’을 방송한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영어·불어·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된 시집이 적어도 17개 나라에서 읽히는 시인 고은이 육성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들려준다.
한국 전쟁으로 3년만에 500만명 가까이가 죽어나갔다. 죽음과 폐허만이 가득한 시기에 고은은 피란을 다니며 하루에도 10여편씩 습작 시를 짓는다. 훗날 그는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살아남은 자로서 고통과 죄의식이 자신을 ‘죽음’이란 화두에 매달리게 했다고 고백한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겪으며 작가의 사회적·역사적 책무를 깨달은 그는 군사독재시절 민족과 현실을 질타하다 네 차례나 구속된다.
이후,2000년에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동행하고,2004년에는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을 맡는 등 현대사의 중심에서 민족적 사업을 이끌어나간다.
“우리 민족에게 통일이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의 문화적 고향으로 가는 것이다.” 한민족과 언어에 대해 얘기하는 그의 음성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2007-07-3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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