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태풍태양’이란 작은 영화에서 사람들은 천정명을 기억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세상에 절규하듯 인라인 스케이트를 휘몰아 타던, 반항과 우수로 완강했던 청춘의 눈빛. 오목조목 깎아놓은 것같은 이국풍 이목구비. 홍콩에서 수입해온 신인(홍콩배우라는 오해를 실제로 많이 받았단다.)이 아닐까, 영화가 끝나자마자 배우 프로필을 뒤져본 기억이 기자에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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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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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명
그리고 1년. 그는 몰라보게 세졌다.22일 개봉하는 ‘강적’(제작 미로비젼)은 천정명의 영화이다. 열네살 연상의 대선배 박중훈과 투톱을 이뤘지만 드라마의 추동력은 그에게 쏠렸다. 살인누명을 쓴 게 억울해 감방에서 도망나온 탈옥수. 여자친구와 포장마차를 꾸리며 폭력세계를 벗어나려 몸부림쳤으나 꼬이기만 하는 청춘. 박중훈이 든든한 맏형처럼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판이 비좁다며 활개를 치는 주인공이 다름아닌 그이다.
“전체 촬영분에서 10%쯤 삭제됐을 뿐 찍은 장면들이 거의 다 나왔어요. 꿈을 위해 끝까지 안간힘을 쓰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죠. 내가 봐도 심심하지 않고, 재미있게 배울 점이 많았던 영화라는 데 아주 만족해요.”
자동차에 치이는 장면 빼고는 난이도 높은 액션장면들을 거의 대역없이 찍었다.“뭔가 새롭게 도전해볼 수 있다면 그게 즐거움 아니냐?”며 “5m쯤 등 뒤에서 자동차가 폭파되는 장면을 직접 찍을 때는 정말이지 짜릿했다.”고 한다.
스물일곱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수줍은 웃음. 단답형의 느리고 어눌한 말투. 입심 좋고 민첩한 요즘 젊은 스타들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이미지이다.“낯을 가리는 성격 탓인지 연예계 친구가 없다.”는 그는 “영화든 드라마든 촬영 초반에는 수줍음 때문에 애를 많이 먹는다.”고 씨익 웃는다. 박중훈과도 생초면. 붙어다니는 장면들로 채워지다시피 한 버디무비였으니 고충이 적잖았을 것이다.“선배와는 촬영을 앞두고 처음 만났어요. 감독, 제작사 대표와 넷이서 만난 첫날 선배님이 제안하더라구요. 형이라 부르라고. 큰형처럼 편해서 대선배란 부담감을 까맣게 잊고 촬영할 수 있었어요.”
신인같은 풋내가 여전하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도 연예계 밥을 먹은 지 10년이 다 됐다.‘길거리 캐스팅’돼 고2때(97년) 처음 찍은 CF가 샤니 호빵. 몇편의 CF를 더 찍었으나 쉽게 인기세례를 받지는 못했다. 영화 ‘아 유 레디’(2002년)와 단편 ‘이공’(2004년)을 찍었어도 반응은 신통찮았다. 짧지 않은 무명세월을 거치며 만사엔 다 때가 있다는 여유를 배울 수 있었다.‘태풍태양’을 찍고나니 TV드라마, 시나리오가 갑자기 쏟아져 들어왔다.“드라마 ‘패션 70´s’‘굿바이 솔로’를 찍고 난 뒤 인기란 걸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NG를 내고도 주눅들지 않고 연기내공을 쌓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요즘이 즐겁다. 천정명이란 이름이 들어간 기사들은 일일이 직접 스크랩해서 챙길 만큼 부지런을 떨기도 한다.
인생 뭐 있어?(영화 속 대사)
누군가 이렇게 물으면 영화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대답해줄 생각이다.“인생 뭐 있다!”고.“나중에 꼭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친구들이랑 스포츠센터를 차리는 거요. 학교다닐 때 꿈(체육학과 출신)이었는데 이룰 수 있을 것 같죠?”
꽉찬 인생에는 욕심이 많아야 할 것이다.“고만고만한 로맨틱 코미디는 싫고, 심심하지 않고 평범하지 않은 진한 사랑영화를 찍고 싶다.”고 한다.
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탈옥수와 인질 타락형사 잃을것 없는 두남자 우정
형사와 탈옥수. 대각선 꼭짓점에 맞서야 할 인물들이 한 배를 타게 되는 이야기 구도는 한국 액션치고는 그리 흔치 않은 설정이다.‘정글쥬스’로 참신한 작법을 인정받았던 조민호 감독의 신작 ‘강적’은 상반된 두 주인공 캐릭터가 빚어내는 격렬한 파열음으로 꽉 채워진 ‘쎈’ 액션물이다.
투병 중인 어린 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삼류 건달들의 뒷돈까지 넘보게 된 강력계 형사 하성우(박중훈). 엉겁결에 탈옥수 수현의 인질이 되자 차라리 순직수당이나 타내자는 오기로 수현에게 바짝 다가가고 그러는 사이 수현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더이상 잃을 것 없이 추락한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리기 위해 영화는 타락한 형사와 탈옥수라는 극단적 카드를 뽑아들었다. 한때 몸담았던 폭력조직의 음모로 살인누명을 쓰게 된 수현이 억울함을 벗으려 탈옥하는 과정 등 출발부터 영화는 긴장의 고삐를 틀어쥔다. 경찰과 폭력조직에 동시에 쫓기며 막다른 궁지에 몰리는 수현, 아들의 병원비를 받는 대가로 인질범의 누명을 벗겨주기로 작정한 성우는 밑바닥 청춘의 비애와 뿌리칠 수 없는 부성애로 시종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린다.
‘정글쥬스’만큼의 선도를 기대한다면 실망의 여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와 액션을 균형있게 섞어 감상하고 싶은 관객에겐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다. 박중훈의 변함없이 안정된 연기를 밑천으로 월드컵 기간에 개봉엄두를 냈을 만큼 대중성과 완성도를 적절히 갖췄다는 평가들이다.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2006-06-16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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