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결국 언론과 언론인의 책임문제로 연결된다. 우리의 선배 언론인들은 과연 어떤 신조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았을까. 각 언론이 상업화 일변도로 치닫는 요즘, 앞서 고난을 겪어온 이들의 족적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서강대 언론대학원 조맹기 교수가 이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역대 우리 주요 언론인들의 사상에 대한 분석을 시도해 주목을 끈다.
조 교수는 최근 발간된 ‘한국언론인물사상사’(나남출판)를 통해 후세 언론인에게 큰 영향을 준 11명의 언론인 족적을 살펴보고, 각 인물이 시사하는 의미들을 짚어주고 있다.
독립신문 창간과 운영을 주도한 서재필은 지금까지 언론자유, 자유민주주의, 천부인권 사상에 치중하였으나, 필자는 서재필의 과학기술적 사고에 집중한다. 병균학을 전공한 의사 서재필은 과학적 분석에 관심을 가졌으며 현대 문물의 전신으로 유입된 뉴스와 형식에 관심을 가졌다. 즉 한반도 ‘정보혁명’을 이끈 장본인이었다고 평가한다.
서재필의 뒤를 이어 독립신문을 맡아 운영한 윤치호는 정부에 매우 저항적이었다. 그는 비판을 통해 언론자유를 확보하려고 했으며, 이 과정에서 민권, 민주주의, 자유주의 원리에 관심을 가졌다.
신채호는 강한 민족주의 정신과 더불어 언어적 표현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언론이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민족 구성원간의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위한 도구임을 규명하려고 했다.
필자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사장, 편집국장 등 핵심인물로 활동한 이광수가 ‘무정’ 이후 언론사의 ‘조직원’이었음에도 그의 언론분야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도 지적한다. 그는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위한 언어계발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언론의 중요한 덕목인 윤리문제 때문에 언론인으로서의 연구에서 항상 푸대접을 받아왔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또 홍명희는 단 한편의 연재소설 ‘임꺽정’을 썼을 뿐이며, 사실은 객관적, 사실적 보도에 충실한 언론인이었다고 강조한다. 이밖에 권위주의 정권에 도전하여 ‘국민의 알권리’,‘자유언론’을 주창했던 최석채,‘사상계’를 통해 부패 정권에 대한 ‘파수견’ 역할을 자임했던 장준하 등 한국 언론역사에 크게 기여한 11인의 인물을 심도있게 다루었다.1만 6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