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미리 볼 수 있다면…. 정해진 시간의 법칙 속에서 같은 질량의 모래알을 세며 살아가는 인생이 지겹거나 버거워질 때, 허황된 꿈인 줄 알면서도 점괘에라도 의지해보려는 것이 인간의 심리일 것이다. 특히 요즘같이 혼돈과 디지털이 지배하는 시대엔 미래로 달려가고픈 상상력이 현실을 넘어서게 마련이다. 그 때문일까. 최근 미래를 예견하고 미래를 뒤바꾸는 영화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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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먼저보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최근 개봉작 가운데 미래를 경험한 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미래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뒤바꾸는 내용의 영화들이 유독 많다. 먼저 지난달 개봉한 장윤현 감독의 ‘썸’은 미래를 보는 교통방송 리포터가 한 형사의 죽음을 예견하는 이야기. 총에 맞고 죽는다는 것을 들은 형사는 총알을 넣지 않는 방법으로 자신의 운명을 비껴간다.
최근까지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멜로물 ‘이프 온리’에서도 주인공은 미래를 먼저 경험한다. 엉망진창인 하루를 보낸 뒤 애인이 사고로 죽지만 다음날 눈을 떠보니 다시 그 하루가 그대로 반복되는 것.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행동이 달라지고 결과까지 뒤바뀐다. 로맨틱코미디물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것’의 주인공은 자고 일어나보니 17년이나 지난 30세가 돼있다. 처음엔 좋아하지만, 진실된 친구 하나 없고 사랑하는 남자까지 빼앗긴 뒤 다시 13세로 돌아와 새 삶을 꾸려 미래를 바꾼다.
스릴러물 ‘팜므 파탈’도 마지막 반전에서 대부분의 내용은 주인공이 꿈에서 본 미래였음이 밝혀진다. 현재로 돌아온 주인공은 자신이 대신 행세했던 여인의 자살을 막아 미래를 바꾼다. 이번주 예매율 1위를 기록한 영화 ‘나비효과’는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뒤바꾼다는 점에서 비슷한 내용이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지금까지 영화에서는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가 압도했다.”면서 “시대가 디지털화되면서 미래를 바꾸고 싶다는 욕망과 상상력이 현실을 압도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타임머신은 필요없다?-장르 다양화
지금까지 미래를 보거나 예견하는 영화는 ‘백 투 더 퓨처’로 대표되는 SF물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개봉하는 영화들은 스릴러, 드라마, 로맨틱코미디, 멜로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미래를 영화적 소재로 삼고 있다.SF가 아니다보니 미래나 과거로의 시간이동에 과학적인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썸’이나 ‘팜므 파탈’은 데자뷔로 미래 예견을 설명하고,‘이프 온리’나 ‘완벽한‘은 별 설명도 없이 마법 같은 일이 발생한다.‘나비효과’역시 일기속 글자들이 움직이다가 과거로 빨려들어가는 황당한 방법으로 시간이동을 한다.
이는 논리적 설명보다는 영화의 플롯을 복잡하게 해서 관객과 게임을 벌이려는 최근 영화의 한 경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관객의 호기심을 끌고 구성을 복잡하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 패러독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면서 “시간 패러독스가 타장르로까지 확산된 것이 최근 할리우드 영화의 한 경향”이라고 분석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2004-11-19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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