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131)-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31)-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입력 2004-07-07 00:00
수정 2004-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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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주공은 공자가 이상으로 삼았던 사람으로 주나라 초기 예의 제도를 지정하여 공자에게 예의 사상을 싹트게 했던 성인이었다.그러므로 공자는 꿈속에서라도 주공을 만나 그를 닮고 싶어하였듯이 음악을 통해서는 주나라를 건국한 문왕을 만나 보려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공자가 제나라로 망명했을 때 순임금의 음악 소를 듣고 석달 동안이나 고기 맛을 잊을 정도로 심취하고,‘음악이 이런 경지에 이르리라고는 생각도 못하였다.’고 감탄하였던 것은 소를 통해 순임금의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순(舜).

고대 중국의 전설상 제왕으로 성천자(聖天子)로 불리어지던 성인.흔히 태평성대를 ‘요순시대’라 하고,유가에서 요순시대를 이상정치가 행해졌던 처음의 시대를 가리키고 있었으므로 유가의 창시자인 공자가 순임금이 작곡한 소라는 음악을 듣고 석달 동안이나 고기 맛을 잊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소는 ‘소무(昭舞)’라는 무악의 준말로 순임금이 직접 지은 음악이었다.그러나 공자는 문왕의 아들 무왕(武王)이 지은 음악 무(武)를 듣고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팔일(八佾)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오고 있다.

“순임금의 음악 소는 아름다움도 다했고 또 훌륭함도 다했다.그러나 무왕의 음악 무는 아름다움은 다했으나 훌륭함은 다하지 못하고 있다.”

무왕은 문왕의 아들이자 주공의 형으로 주나라의 2대왕이었다.무왕은 아버지가 못 이룬 주왕(紂王)의 대군을 격파하여 상나라를 멸망시킨 영웅이었으나 공자는 오히려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던 문왕이 무력으로 천하를 제패한 무왕보다 더 이상적인 군주임을 간접적으로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무(昭武).

중국 고악의 이름으로 소는 순임금의 음악이고,무는 무왕의 음악인데,공자는 천하를 제패한 무왕보다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던 문왕을 더 성군으로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왕의 음악은 ‘아름다움은 다했으나 훌륭함은 다하지 못하고 있다(盡美矣,未盡善也).’라고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문왕은 주왕에 의해 유배생활을 했으나 고통을 참으면서도 팔괘(八卦)를 연구하여 중국 최초의 경서인 주역(周易)을 만들고,직접 칠현금(七絃琴)을 발명하여 자신의 유배된 신세를 빗대어 ‘구유조(拘幽操)’란 금곡을 창작하고 항상 이를 연주하였던 것이다.공자가 사양자에게 금을 배울 때 바로 그 음악이 문왕이 작곡한 ‘구유조’임을 꿰뚫어 보고 문왕의 생김새를 형상해낸 후 ‘마음은 천하를 지배할 형상’이라고 표현한 것은 공자가 음악을 통해 진정으로 무엇을 얻으려 했는가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공자는 노나라의 태사악(太師樂)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음악은 잘 알 수가 있다.연주를 시작할 적에는 소리가 합쳐 나오고,이어서 잘 조화되고,그러고는 각 음이 뚜렷해지고 계속 이어져 나감으로써 일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공자가 악관의 우두머리에게 이러한 음악론을 이야기한 것을 보면 위대한 사상가였던 공자가 또한 얼마나 또 뛰어난 음악인이었는가를 증명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가 제나라에 망명 후 경공이 자신을 부르지 않는 소외 상태의 고독 속에서 이에 개의치 않고 순임금의 음악 소에 빠져 석달 동안이나 고기 맛을 잊을 정도로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냈던 것은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엿보게 하는 장면이기도 한 것이다.˝
2004-07-0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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