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전 세포 적출돼 많은 생명 구한 랙스의 가족, 바이오기업과 화해

72년 전 세포 적출돼 많은 생명 구한 랙스의 가족, 바이오기업과 화해

임병선 기자
입력 2023-08-02 11:14
수정 2023-08-0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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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서른한 살 한창 나이에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난 미국 볼티모어 여성 헨리에타 랙스. 의료진이 그녀에게 알리지도,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자궁 세포를 떼내 연구실에 보낸 것이 지금도 사용될 정도로 의학계의 많은 혁신을 가져와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했다. AFP 자료사진
1951년 서른한 살 한창 나이에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난 미국 볼티모어 여성 헨리에타 랙스. 의료진이 그녀에게 알리지도,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자궁 세포를 떼내 연구실에 보낸 것이 지금도 사용될 정도로 의학계의 많은 혁신을 가져와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했다.
AFP 자료사진
1951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살던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는 담뱃잎을 재배하며 아들 로렌스(89)을 돌보던 서른한 살의 주부였다. 어느날 복부 출혈 때문에 존스 홉킨스 병원 산부인과에서 진찰을 받았다. 자궁에 큰 핏덩이가 고여 있었다.

의료진은 자궁암을 치료하기도 전에 그녀에게 알리지도 않고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채 종양에서 떼낸 자궁 세포들을 배양한 뒤 이를 의료 연구소로 보냈다.

그녀의 세포 샘플을 제공받은 곳은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더모 피셔(Thermo Fisher) 과학 연구소였다. 이름과 성의 첫 두 글자씩 조합해 ‘HeLa’로 통했다. 이곳 실험실에서 거의 모든 세포 샘플들은 곧바로 죽어버렸는데 랙스의 샘플만은 계속 복제되고 나이를 먹지도 않아 그곳 사람들은 불멸의 세포라고 불렀다. 이 샘플은 의학계에 도드라진 성과들을 가능케 했고, 7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 연구소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소아마비 백신 개발, 후천성면역결핍증(HIV) 연구의 진전, 암과 난임 연구 등에서 ‘HeLa’ 샘플은 큰 도움을 줬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 일부가 이런 과학적인 기적을 가져다줬는지 알 겨를도 없이 암 진단 몇 달 뒤 한창 때 나이에 세상을 떠나 묘지에 비석조차 없이 묻혔다. 가족이 그녀의 세포에 엄청난 사연이 감춰져 있음을 알게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랙스 가족은 생전에 고인이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며 훔쳐간 세포들에게 정의를 돌려줘야 한다며 몇년 동안 소송을 벌여 왔는데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법정 화해에 이르렀다고 영국 BBC가 다음날 보도했다. 화해 금액은 공표되지 않았다.

최근 몇십년 동안 미국의 흑인 민권 관련한 소송에 빠지지 않고 얼굴을 드러내는 벤 크럼프 변호사가 가족을 대신해 더모 피셔 연구소와의 협상을 이끌었다. 그는 소송 내내 흑인들이 도움을 얻고 싶어 찾아간 의사들로부터 착취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크럼프 변호사는 이날 성명을 통해선 “너무 자주 미국에서의 의학 실험 역사는 의학적 인종차별의 역사였다”고 개탄했다.

1일 기자회견이 열렸는데 마침 살아 있다면 랙스의 103번째 생일 날이었다. 크럼프는 양측 모두 화해를 “기쁘게” 받아들인다며 “이보다 나은 선물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모 피셔 측은 여러 차례 공소시효가 지났음을 주장하며 소송을 기각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랙스 가족 변호인들은 여전히 복제된다는 점을 들어 공소시효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크럼프 변호사는 “헨리에타 랙스의 유전체 물질이 재생되고 수익을 만들어내는 모든 순간 시효가 새로 시작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HeLa 세포는 헨리에타 랙스”라고 주장했다.

2021년 WHO는 랙스에 의해 많은 과학적 돌파구가 가능해졌다며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리예수스 사무총장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행사 도중 “헨리에타에게 일어난 일은 잘못 됐다”고 단언하며 “헨리에타 랙스는 착취당했다. 그녀는 과학이란 이름으로 신체를 잘못 이용당한 많은 유색인종 가운데 한 명이다. 그녀는 보건 시스템을 믿고 치료를 받았는데 그 시스템은 그녀가 알지도, 동의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뭔가를 빼내갔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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