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오는 26일(현지시간) 대통령선거 결선투표를 다시 실시한다고 4일 밝혔다. 여당 후보 빅토르 야누코비치 총리가 당선된 것으로 나타난 지난달 21일 결선투표 결과에 대해 3일 대법원이 무효 판결을 내리면서 대규모 시위를 불러온 부정선거 파문이 재투표 실시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야당이 요구한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여당이 대통령 권한 축소를 뼈대로 한 헌법 개정안 요구로 맞불을 놓고 있어 이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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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열린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집권 여당연합의 의원들이 야당측이 내놓은 선거법 개정안의 통과를 막고 10일간 휴회를 선언하자 야당 지지자들은 그동안 요구해온 재투표 실시 요구가 받아들여졌음에도 불구, 정부청사 봉쇄를 풀지 않고 시위를 이어갔다. 빅토르 유시첸코는 선거법 개정안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5일 지지자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선거가 투명하게 치러지도록 국제사회가 선거 감시에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독립된 감시단을 다시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우크라이나계 캐나다인 1000여명이 26일의 결선 재투표를 감시하기 위해 고국을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유시첸코의 야당이 선거 공정성 강화 방안을 담아 의회에 상정한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여당측은 대통령의 일부 권한을 의회로 이양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안에 합의할 경우 통과시켜 주겠다고 버티고 있다. 유시첸코는 여당측이 재투표에서 패배할 경우에 대비해 대통령의 권한 축소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며 레오니트 쿠치마 대통령이 선거법 개정을 막고 있다고 비난했다. 쿠치마 대통령은 유시첸코가 지난 1일 유럽연합(EU) 중재로 열린 여야 대선 후보 협상에서 선거법과 헌법 개정안의 동시 통과에 합의하고도 딴소리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임기를 마지막으로 물러나기로 약속한 쿠치마 대통령이 측근들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당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 권한을 강화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야당은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2006년 총선 때까지는 발효되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를 붙여 협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6일 EU의 중재로 열릴 예정인 후보간 3차 협상에서 선거법 개정안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주목된다.
우크라이나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 온 미국과 러시아는 재투표 결정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우크라이나 대법원 판결을 가리켜 “우크라이나 국민의 승리”라고 반기면서 선거의 공정성 감시를 위해 유럽 등과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보리스 그리즐로프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의장은 “대법원의 결정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한편 야누코비치가 아닌 제3의 인물이 26일 결선 재투표에 여당 후보로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야누코비치가 출마 의사를 밝혔지만 대법원의 당선 무효 판결로 인해 여론의 압박을 받고 있어 출마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를 대신할 후보로는 대선 1차 투표에서 3위를 기록한 올렉산드르 모로즈 사회당 대표가 거론된다고 AFP 통신이 5일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