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비난할 자는 아무도 없어. 세일즈맨은 꿈꾸는 사람이거든.” 윌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웃 찰리의 말이다. 윌리는 세일즈맨으로 일하다 자신의 삶을 세일즈하는 방식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한데 그런 윌리의 인생은 찰리의 말마따나 비난받을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찰리의 변명과 상관없이 윌리를 비난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윌리가 꿈꾸는 사람이기는 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가 꿨던 꿈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이것이 희곡을 바탕으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의 목록이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각색했다.
이때쯤이면 관객은 아쉬가르 파라디가 얼마나 영리한 감독인지 알게 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원작의 중심 캐릭터 윌리를 영화에서 단 한 사람으로 특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선 매일 밤 윌리로 분하는 에마드가 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무대의 윌리’다. 다른 윌리는 에마드가 찾아낸 범인이다. 세일즈맨으로서 돈을 벌고 있는 그는 ‘현실의 윌리’다. 이렇게 무대의 윌리와 현실의 윌리가 부닥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위에 언급한 질문들이 둘을 향해 쏟아진다. 섣부른 답은 금물. 여기에서는 다만 윌리의 마지막 선택에 대한 린다의 독백을 옮기려 한다. “미안해요, 여보. 울 수가 없어요. 알 수가 없네요. 왜 그런 짓을 했어요?” 11일 개봉. 15세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