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상한 그녀’로 성인 연기 신고식 한 배우 심은경

뒷짐을 지고 뒤뚱뒤뚱 걷는 걸음걸이, 삶은 닭을 쭉쭉 찢어 손자의 입에 넣어 주는 손짓이 영락없는 할머니다. 늦은 밤 자신의 뒤를 밟은 방송사 PD를 두고 “남자는 아랫도리 단속을 잘해야 혀”라고 혀를 끌끌 차고,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는 “처자식 안 굶기고 밤일만 잘하면 된다”며 능청을 부린다. 아역배우로 활동해 온 심은경(20)이 첫 타이틀롤을 맡은 영화 ‘수상한 그녀’(22일 개봉)의 주요 장면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스무 살로 돌아간 일흔 살 할머니를 연기한 그는 완전히 할머니에 ‘빙의’됐다.

영화 ‘수상한 그녀’를 촬영하기 전까지 2년 반 동안 미국 유학을 했던 배우 심은경은 “말이 통하지 않아 외로움을 겪고 뒤늦은 사춘기도 거치면서 오히려 배우로서의 좌표를 또렷이 인식할 수 있었다”고 했다.<br>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20세 여성이라면 어느 누군들 예뻐 보이고 싶지 않을까. 심은경도 다를 것 없다. 남편을 잃고 홀로 갓난아기를 키우는 회상 장면을 찍으면서는 “아직 연애도 안 해 봤는데 이런 역할을 시키는 게 어디 있어요”라고 애교 섞인 반항도 해 봤단다. 그가 연기한 ‘오두리’는 백방으로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뒷방 늙은이가 돼 버린 70세 할머니 오말순(나문희)이 젊은 시절 못다 한 꿈과 사랑을 누리는 오두리는 스무 살의 설렘과 일흔 살의 애환을 종횡무진 오간다. 가수가 돼 엉덩이를 씰룩대면서 춤추며 노래하고, 할아버지뻘인 박씨(박인환)와 로맨스를 엮고, 아버지뻘인 아들 현철(성동일) 앞에서는 눈물도 흘린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이번 작품이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유학 중에 시나리오를 받고는 연륜과 경험이 묻어나는 역할을 어린 제가 할 수 있을까 걱정됐어요. 하지만 성동일 선배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 그 하나만 놓고도 충분한 이유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특히 성인 연기자로 도약하는 첫 작품이자 유학 후의 복귀작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써니’ 때도 주연이긴 했지만 혼자 극을 이끌어 가는 영화는 처음이에요. 책임감을 느끼지만 설레기도 하네요.”

영화 ‘수상한 그녀’의 한 장면.
심은경은 2004년 데뷔한 이래 방송가와 영화계에서 ‘결이 다른’ 아역배우로 성장해 왔다. 동글동글한 눈과 얼굴이 마냥 천진난만해 보이지만 ‘황진이’(2006), ‘태왕사신기’(2007) 등 굵직한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아역을 연기하고 영화 ‘써니’(2011)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서 관객들을 웃기고 울렸다.

‘수상한 그녀’는 그가 쌓아 온 연기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하는 작품이다. 오말순 역의 나문희와 ‘싱크로율’을 높이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덧댔다. “나문희 선생님의 촬영 영상을 이메일로 받아서 연구했어요. 걸음걸이, 말투, 표정, 억양 등에 포인트를 잡고 그 위에 저의 캐릭터를 덧입혔죠. 틈날 때마다 감독님 앞에서 대사를 읽어 보고 어떻게 표현할까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또 아들을 홀로 키워 온 할머니의 고된 삶을 이해하기 위해 그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려서 데뷔한 그를 위해 매니저로, 스타일리스트로 고생한 어머니였다. “어머니와 저는 거의 한사람이었어요. 제가 밤을 새우면 같이 밤을 새우시고, 제가 추위에 떨면 엄마도 같이 추위에 떠셨죠. 제가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지만 어머니를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져요.”

지금껏 스크린에 비친 이미지와 다르게 스스로 ‘20대 차도녀’라 칭하는 그는 현재의 코믹하고 발랄한 이미지 외에도 보여 주고 싶은 모습이 많단다. 하지만 ‘성인 연기자로서의 첫 작품으로 성숙미를 뽐내는 건 어땠겠느냐’는 질문에 까르르 웃는다. “할머니 역할이 성숙미가 있잖아요. 너무 성숙해서 탈이죠.” 새로운 이미지보다 물오른 연기력으로 ‘성숙’을 보여 주는 심은경다운 성인 연기자 신고식이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인기기사
인기 클릭
Weekly Best
베스트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