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주년 기념앨범 ‘다시 힙합’ 발표

인터넷이 없던 1990년대 중후반, 힙합에 매료된 이들은 PC통신의 동호회를 통해 기호를 공유했다. 신촌의 ‘마스터플랜’이라는 클럽에 실력 있는 래퍼들이 모여들면서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꽃피었고 한국 힙합의 역사가 시작됐다. 1998년 이 ‘마스터플랜’에서 뭉쳐 결성된 듀오 가리온(MC메타·MC나찰)은 한국 힙합 1세대를 개척한 힙합계의 ‘큰형님’이다. 랩이 대중가요의 장식품 취급을 받고 생존을 위해 대중과 타협하며, 듣기 편한 힙합 음악들이 음원차트 상위권을 휩쓸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1990년대 후반 한국 힙합 1세대의 개척자로 올해 데뷔 15주년을 맞은 힙합계의 ‘큰형님’ 가리온. 이들은 ‘팔리는 힙합’이 넘쳐나는 현 세태를 비판하고 ‘진짜 힙합’을 고민하자는 메시지를 15주년 기념 앨범에 담았다.<br>피브로사운드 제공
가리온이 지난달 29일 15주년 기념 앨범을 발표했다. 제목은 ‘다시 힙합’. 가요계에 힙합이 대세라는 지금 왜 ‘다시 힙합’일까? 이들의 메시지는 대중가요와 다를 바 없어진 힙합을 반성하고 ‘진짜’ 힙합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힙합이 대중화되고 힙합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난 건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힙합은 진실된 에너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지금은 발라드나 말랑말랑한 멜로디 위에 사랑에 대한 가사를 입히는 천편일률적인 힙합 음악만 쏟아지고 있어요.”(MC 메타)

래퍼로서의 삶과 힙합 신에 대한 성찰을 랩으로 풀어내 온 가리온은 앨범 발매에 앞서 공개된 ‘거짓 2013’에서 힙합계의 현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힙합이 힙합이 아니면 힙합이 아니지”라고 일갈하며 “내 밑바탕은 이 문화에 깊은 애정이며 내 목표는 오직 하나,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의 랩 실력!”이라고 자신한다. 그 외에도 ‘그래서 함께하는 이유 2013’, ‘파라독스’ 등 총 5곡의 수록곡에 힙합 신에 대한 반성과 같은 길을 걸어가는 이들을 향한 애정을 담았다.

가리온의 15년은 힙합의 정신을 지키려는 고집과 뚝심으로 일궈낸 역사다. 이들은 미국 힙합의 복제품이기를 거부하고 한국적 힙합에 대한 실험을 거듭했다. 가리온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우리말 랩이다. 영어 가사나 추임새를 배제하고 우리말의 각운을 이용한 라임을 구체화해 우리말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적인 랩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또 잦은 앨범 발매보다 언더그라운드 공연을 활동의 중심에 두고 힙합 클럽이 사라져가는 홍대를 지켜왔다.

이들이 말하는 힙합의 정신은 창조성과 다양성 위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다. 지금의 ‘팔리는 힙합’에 힙합 정신의 결여를 지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고집하던 친구들이 생활고 탓에 메이저로 전향하곤 합니다. 하지만 메이저 회사에서 요구하는 트렌디한 음악에는 창조성도 다양성도, 자신의 이야기도 없어요. 때문에 초창기부터 메이저와 선을 그은 우리만의 시장을 만들고 키워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래야 우리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후배들에게 떳떳해질 수 있거든요.”(MC 메타)

가리온은 오는 14일 서울 마포구 홍대 상상마당에서 15주년 콘서트 ‘뿌리 깊은 나무’를 연다. 또 내년에는 4년 만의 정규 3집 앨범을 낸다. 또 이들은 진정한 힙합을 지켜가려는 후배들을 위해 과거 ‘마스터플랜’과 같은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회사(피브로사운드) 사무실의 연습실을 개방해 누구나 자유롭게 공연하고 연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은 “힙합이 삶 속에 녹아있고 그 에너지로 살아가는 ‘힙하퍼’(Hiphoper)라는 용어를 다시 끄집어고자 한다”면서 “힙하퍼들이 살과 살을 맞대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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