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
영화배우 손예진(22)은 빈틈없이 예쁘고 고운 여자였다. 뚫어져라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웃거나 찡그리거나 미운 곳이라곤 없었다. 165㎝의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나오고 들어간 데가 분명한 몸매도 나무랄 데 없기는 마찬가지다. 2001년 데뷔작(MTV ‘맛있는 청혼’)에서 주인공을 따낸 이례적인 사례인 그는 첫 작품에서부터 똑 떨어지게 배역을 잘 소화하며 한방에 스타덤에 안착했다. 생각해보니 이제껏 ‘외모에 비해 연기력이 딸린다’ 류의 싫은 소리를 들어보지도 않은 것 같다. 모든 걸 가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손예진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인간미가 2% 부족하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이슬만 먹고 살 것처럼 청초한 그를 지지하는 팬도 많지만, 못마땅해하는 팬 또한 없지 않다. 손예진은 자신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일단 이런 궁금증을 갖고 K2TV ‘여름향기’이후 1년 만에 가슴 시린 멜로영화인 ‘내 머리속의 지우개’(이재한 감독·다음달 5일 개봉)를 내놓는 그를 만났다.

1시간여의 대화로 짐작해본 손예진은 호감도란 세간의 기준에 맞게 자신을 잘 포장하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속내를 요령있게 드러내지 못할 뿐 가식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게다가 이번 영화에서 각별한 사랑을 경험한 그는 ‘자기다움’과 ‘자기답지 않음’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상태였다.

● 멜로가 좋아 멜로로 돌아왔다

손예진은 멜로 작품을 좋아한다. 책도 연애소설을 좋아한다. 액션 같은 다른 장르의 작품에 도전하고 싶다가도 결국 마음이 꽂히는 것은 멜로영화다. ‘여름향기’란 멜로드라마를 끝낸 뒤 ‘내 머리속의 지우개’란 멜로영화로 행보를 정한 것은 자신의 심장박동을 자연스럽게 따라간 선택이다.

영화 속 그의 배역인 ‘수진’은 구김살이라고는 전혀 없는 부잣집 딸내미다. 그는 사랑하는 상대를 향해 앞만 보고 돌진한다. 가난한 목수인 ‘철수’(정우성)한테도 한눈에 반해 결혼까지 한다. 그런데 수진과 철수의 아름다운 사랑에 눈물을 드리운다. 수진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기억을 잃기 때문이다.

손예진은 수진에 대해 “내공이 대단한 여자다. 나같으면 못했을 행동을 단순하고 거침없이 저지른다. 나도 신기해하면서 연기했다”라며 애정있는 말투로 설명했다.

실제의 그는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으며,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사랑에 빠질 자신도 없다. 손예진은 “수진처럼 순수하지 못해서인가 보다”라고 자조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무슨 일에든 남들보다 3배 정도 많이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참고하면 모든 게 신중한 성격 때문일 것이다.

그는 “나에 관한 사람들의 오해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준 배역의 성격과 나를 동일시하는 데서 빚어진 것 같다”고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손예진은 늘 밝게 웃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무표정하게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당황하는 것 같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일부러 어떤 표정을 짓는 게 어색하다. 그냥 내 모습은 중학교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인터넷에 떠도는 가시 돋친 말들에 대해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 말들에 신경을 써 나를 바꾼다는 게 오히려 가식 같다. 언젠가 진심은 통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 정우성한테 ‘넓은 시야’를 배웠다.

손예진과 정우성을 동시에 포착한 사진을 보면 정말이지 선남선녀가 따로 없다.

두 사람이 그림처럼 잘 어울린다고 칭송하자 “촬영 당시 정우성과 나란히 서서 연기할 때 20cm 키 차이를 줄이기 위해 단상을 사용했다”며 배시시 웃었다.

9세의 나이차 때문에 ‘오빠’대신 ‘선배님’이란 호칭을 사용했다는 그는 “정우성의 눈물 연기를 보면서 ‘남자가 울면 안아주고 싶구나’란 마음이 절로 들더라”며 또다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무엇보다 주위 스태프를 자상하게 챙기는 정우성의 모습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연기만 잘하면 되지’라고 여겼다.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성격이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 없다 해도 ‘선배님’을 통해 주위를 돌아보는 사람이 돼야겠다란 생각이 생겼다.”

촬영장 밖에 있는 인간 손예진의 삶에 평범 이상의 역동적인 무엇은 없다. 혹시 술 먹으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가령 술에 취해 먹고 테이블 위에 올라가 화끈하게 춤을 추는 것도 부럽긴 한데 잘 못하겠다. 흥에 겨우면 몸만 살짝 흔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연기로만 절절한 사랑을 경험해온 이 ‘바른생활’표 아가씨한테도 ‘불같은 사랑’에 대한 꿈은 있다. 영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그런 강렬한 사랑 말이다.

“상대방 모르게 혼자 좋아해본 경험은 있다. 그러나 고백까지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런 아픈 사랑은 못해 봤다. 지독한 사랑의 상처 하나쯤은 가져 보고 싶다.” 누군가에게 푹 빠져 일도 포기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주저없이 튀어나온 그의 반응은 이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만은 안되겠다. 절.대.로.” 웬만해서는 손예진의 일욕심을 막을 순 없다.

조재원기자 j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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