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헌법 왜곡/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교수

[열린세상] 헌법 왜곡/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교수

입력 2015-07-19 18:16
업데이트 2015-07-19 22:56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미지 확대
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교수
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교수
7월 7일자 어느 닷컴 기사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에서 퀴어 축제와 관련해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질서 유지나 공공 업무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면서 “전통적 가치나 규범과도 맞지 않기 때문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기사였기 때문이다. 다른 언론기관들의 기사들을 확인한 결과 ‘공공 업무’라는 것이 후보자의 말이 아니라 후보자가 ‘공공복리’라고 말한 것을 기자가 잘못 쓴 것임을 알고 한숨을 쉬었지만, 헌법상 중요한 기본 용어를 그렇게 잘못 쓰는 기자나 이를 방치하는 편집부의 헌법 왜곡에 대해서도 고소를 금할 수 없었다. 공공 기관의 업무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표현의 자유는 아예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퀴어 축제를 질서 유지와 공공복리에 위배된다고 본 것은 지난 15년간 너무나 잘 치러지고 있는 행사에 대한 판단으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런 행사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고 그 어디에서도 제한은 없다.

더욱이 후보자가 표현의 자유를 “전통적 가치나 규범”과 맞지 않는 경우 제한할 수 있다고 한 것은 헌법에도 없는 제한 사유일 뿐 아니라 위 기사 등의 경우와 같이 역시 표현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전면적으로 제한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걱정이 된다.

헌법은 세계 보편적인 가치를 담는다. 따라서 6월 말 미국 대법원이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점을 헌법은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동성결혼을 합헌이라고 판결한 것은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 그 며칠 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예수는 정직하고 신실하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어떤 사랑도 지지했을 것이며 동성결혼이 누구에게 해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 것도 우리의 “전통적 가치나 규범”과 위배된다고만 볼 수 없다. 우리나라 전 대통령들이 동성결혼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문제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점에서도 카터를 비롯한 미국 대통령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등 정치권의 행태가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는 아예 코미디라는 야유가 세계적으로 너무 자주 터져 나오고 있음을 최근 여러 나라 신문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어서 너무나 부끄럽다.

특히 최근 문제 된 국회법 개정안의 내용을 대통령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그런 거부권이나 정부의 법률안 제안권에 대응해 국회가 행정입법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야만 권력 분립의 내용인 견제와 균형에 맞다는 초등학교 수준의 헌법 상식조차 모르는 어불성설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그보다 더한 내용의 개정안을 냈고, 현 정부의 장관인 헌법학자도 자기 책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한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것을 이유로 국회의 여당 원내대표를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축출한 것 자체가 위헌일 뿐 아니라 더욱더 웃기는 짓이다. 그래서 위헌 정치니 위헌 정부니 위헌 행정이니 위헌 대통령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이런 정치적 왜곡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회적 왜곡이다. 바로 지난 6월 2일 헌법재판소가 전교조를 법외 노조로 만든 근거가 된 법률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 단적인 예다. 헌법에서 노동조합은 자주성을 비롯한 적극적 요건을 갖추면 충분하고, 법률에 나열된 ‘근로자(또는 교원) 아닌 자’의 가입 등 소극적 요건은 그 해석을 위한 예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조합원이 6만명을 넘는 전교조가 해고 교원 9명의 조합원 가입으로 자주성이 침해될 여지는 전혀 없다. 사실 이러한 법률을 두고 있는 것 자체가 위헌의 여지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법률을 두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동성결혼이든 삼권분립이든 노동조합이든 세계 여러 나라의 헌법이 보호하는 인류 보편의 가치이고 제도다. 한국이 코미디 같은 헌법 왜곡의 대명사라는 세계적인 악명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그 누구보다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2015-07-20 30면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