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헌재에 관한 책의 출간을 보고/금태섭 변호사

[열린세상] 헌재에 관한 책의 출간을 보고/금태섭 변호사

입력 2009-12-14 12:00
수정 2009-12-14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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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우드워즈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미국 연방대법원을 해부한 책 ‘지혜의 아홉 기둥’(원제 The Brethren)을 지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200년 동안 미국인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왔으면서도 비밀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연방대법원의 속사정이 이 책을 통해 속속들이 알려졌다. 일반인은 물론 평범한 변호사들에게도 신적 존재로 여겨지던 대법관들의 모습은 상상과 전혀 달랐다. 자신의 주장을 다수 의견으로 만들 수 있다면 다른 대법관들을 끌어들이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견해가 다른 대법관들과는 비방에 가까운 말을 주고받는다. 물론 인간적인 약점들도 상당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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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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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는 뉴요커 기자 제프리 투빈이 ‘더 나인’(The Nine)이라는 제목으로 후속편에 해당하는 책을 낸다. 대법관 지명을 둘러싼 암투, 한 시대를 장식했던 유명한 사건들의 판결이 결정되는 과정이 다시 한번 손에 잡힐 듯이 공개됐다. 놀라울 정도로 적나라한 내용이지만 진위를 놓고 시비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대법관들 자신이 저자들의 인터뷰에 응해 밝힌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책들에 등장하는 일화 중에는 보기에 따라 비난받을 만하거나 대법관들로서는 감추고 싶을 만한 것도 많지만 저자들이 법원의 권위를 떨어뜨렸다거나 사법에 대한 국민 신뢰를 잃게 했다는 비판을 받지는 않았다. 사건을 놓고 고민하는 판사들의 고뇌와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줌으로써 사법 작용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도왔다는 긍정적 평가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대법관들이 인터뷰에 적극 응한 것도 이러한 작업이 연방대법원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법조 기자 출신의 작가가 우리 헌법재판소를 소재로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단순히 사건이나 재판 과정을 열거한 것이 아니라 결정에 관여한 헌재 재판관들이 직접 밝힌 뒷얘기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신생 헌법기관인 헌재가 자리를 잡아 나가는 과정에서 다른 기관과 벌인 힘겨루기, 탄핵이나 수도 이전과 같은 정치적 사건은 물론 동성동본 금혼이나 간통죄 등 한 개인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재판관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간통죄를 폐지하면 속이 뒤집힌 개인들이 직접 폭력을 휘두를지 모른다는 얘기가 평의에서 나왔다는 대목은 법률의 헌법 위반 여부를 결정할 때 재판관들이 어떤 사정들을 고려하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헌재가 내린 특정한 결정에 찬성하는지 혹은 반대하는지를 떠나 이렇게 결정 과정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헌법재판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외국에 비해 우리 사법은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법정에서 선고된 판결문도 원칙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서류나 자료를 찾아보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 더욱이 판결 선고 전에 이루어지는 일은 전혀 알 수 없다.

흔히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고 하지만, 헌재·법원·검찰 등에서 실제 진행되는 일들을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그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 사법은 독립적이어야 하고 그것은 여론으로부터의 독립도 포함하는 것이지만, 무조건 감춘다고 독립성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개를 통해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때 강한 독립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공직에 있던 사람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보를 공개하는 관행이 생겨나야 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나중에 그와 관련된 자료를 남기는 것은 일종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헌재에서 그치지 말고 법원, 검찰에 대해서도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금태섭 변호사
2009-12-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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