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이 가서명된다. 가서명이란 2007년 5월 이후 2년 넘게 양측이 협상한 결과를 문서로 확정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향후 정식서명, 비준 절차를 거쳐 이행하게 될 것이다. 지난 2일 아일랜드 국민투표에서 유럽 정치통합을 위한 리스본조약이 가결되면서 한·EU FTA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으나 협정 이행에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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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교 인하대 정석물류통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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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교 인하대 정석물류통상연구원장
한·EU FTA는 한·미 FTA와 유사한 구조로 타결되었지만, 전체 협정 내용으로 볼 때 수출입과 직결된 상품시장 자유화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이행 즉시 기업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협정인 것이다. 무역규범, 지적재산권, 투자, 서비스 분야도 포함되어 있지만 한·미 FTA에 비해 경제제도에 대한 내용은 포괄범위가 좁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EU간 상품시장 자유화는 크게 관세철폐와 원산지기준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먼저 상품관세에서 대부분의 민감한 분야는 예외 또는 장기 관세철폐로 최종 합의됐다. 전반적인 시장 개방의 범위는 역대 어느 협정보다 높은 편이다. 제조업 품목수 기준으로 EU는 협정 이행 3년내 99.4%의 관세를 철폐하며 우리나라의 3년내 관세철폐율은 95.8%이다. EU는 우리가 100억달러 이상의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를 내는 곳으로, 양측의 관세철폐는 그만큼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낙농제품, 돼지고기 등 일부 민감품목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겠으나 자동차, 전기전자를 포함한 제조업에서는 우리 기업이 상당한 이익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EU와의 FTA 협상에서 타결하기 어려웠던 분야 중의 하나는 원산지 기준이었다. 원산지기준은 FTA 관세 혜택 적용 대상이 되는 제품의 기준을 뜻한다. 원산지기준이 엄격할수록 제품의 원가에서 자국 및 회원국 내에서 조달된 원료의 비용 비율이 높아지게 된다. EU는 지역무역의 역사가 깊어 이미 1970년대부터 PANEURO라는 유럽식 원산지기준을 사용해 왔다. EU가 서유럽은 물론이고 동유럽 국가까지 회원국으로 확대됨에 따라 자체 내에서 원부자재를 조달하는 비율이 높아졌고 회원국들이 경제통합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역내 부품조달 비율을 높이는 것이 기본정책이 되었다.
EU 원산지기준의 특징은 결합기준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즉 부품의 관세 세번과 완제품 세번이 변경되는 ‘세번변경기준’과 일정 비율의 부가가치가 회원국 내에서 조달되도록 하는 ‘부가가치기준’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원산지 제품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부품에서부터 완제품까지의 생산 공정이 대부분 회원국 내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EU와 달리 수입부품 비중이 높은 우리로서는 두 기준을 모두 충족시켜 관세 철폐의 혜택을 누릴 제품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양측은 진통을 거듭했고, 결국 우리는 세번변경과 부가가치기준 중 하나만 충족시키면 되는 선택기준을 관철시켰다.
막판까지 쟁점이 되었던 관세환급도 같은 맥락이다. 관세환급이란 관세를 물고 수입한 부품으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할 때는 수입 때 낸 관세를 돌려받는 제도를 말한다. 수입부품 비중이 높은 우리로서는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갉아먹는 관세환급 철폐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 또한 EU의 양보를 이끌어 냈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EU와의 FTA가 이행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27개국으로 구성된 거대 유럽시장에 경쟁국 기업보다 유리한 조건 하에 진출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FTA 활용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협정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와 비즈니스 모델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통상관련 당국과 관련 협회, 유관단체의 역할 증진이 필요하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정석물류통상연구원장
2009-10-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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