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성 울산대 물리학 교수
풀뿌리 기초과학이란 대학에서 개인적으로 연구하는 기초과학을 지칭한다. 정부에서 성장동력이라고 내세우는 산업기술 분야와 달리, 기술과 다소 무관하게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야이다. 그 연구가 당장 활용성은 떨어진다 할지라도 다양하고 창의적이어서 가까운 미래에 국가의 지적자원이 되는 분야이다. 적어도 순수한 호기심으로 현상을 이해하려는 학문으로, 미지에 대한 인류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대학 본연의 과학인 셈이다. 그러나 정부의 외면으로 그 기초과학은 점점 왜소해지고 곳에 따라 사그라져가는 처지에 있다.
위와 같은 현안을 다룬 그날 포럼에서는 과학 홀대 정책과 함께 연구비의 지나친 편중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요점은 이렇다. 기초연구에 2조원 정도의 국가예산이 지원되고 있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의 논리로 대학연구자의 77%는 전혀 연구비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학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라는 통계도 그 편중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그 결과 과학의 기반을 연구하는 대다수의 대학 구성원들은 빈손으로 힘겹게 연구실을 꾸려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들에게 조금의 연구비라도 받을 기회를 주어야 풀뿌리 기초과학이 둥지를 틀 수 있다고 진단했다.
포럼에서 제기된 이슈들은 조금 각색되었다 뿐이지 여러 해 전부터 불거진 것들이다. 전국 자연대 학장회의와 전국 기초과학연구소장 회의에서 개인연구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제기하고 당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 세계적으로 창피당했는데도 여전히 홍보성이 큰 단기 업적에만 매달리려 한다. 포퓰리즘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도 할까.
대형 중심의 지원정책이 계속되는 데에는 집단 이기주의도 큰 몫을 한다. 우수집단의 연구자들은 신청서만 내면 집단으로 뭉치 연구비를 받는다. 개인당 수억원 정도이다. 소규모 개인 연구에서는 10대1 정도의 경쟁을 뚫어야 하고 막상 받더라도 수천만원이다. 두뇌한국(BK) 과제의 경우에서다. 첫번째 BK에서는 어떤 일류대학은 신청서만 내면 수혜대상에 들었고, 두번째 BK에서는 상위 몇 대학이 당연하다는 듯 지원비를 챙겼다. 그러니 대형과제의 규모를 줄이고 소형과제 지원을 늘리려는 정책이 시행될 리 있겠는가. 경쟁 없는 수혜는 고인물만 만들 뿐이다. 그럼에도 그 정책이 계속되는 걸 보면 속칭 일류대학들의 집단이기주의는 도가 지나친 듯하다.
원칙을 멀리하는 과학정책이 성공적일 리가 없다.2005년 현재 한국의 과학기술역량이 중국, 인도에 비해 훨씬 뒤처졌다는 CIA 보고서가 그걸 증명한다. 이 보고서는 개인 연구자들의 잠재역량 활성화가 시급함을 다시 일깨워준다. 포럼의 참가자들이 지적했듯이, 다양하고 창의적 연구를 특성으로 하는 풀뿌리 기초과학이 살아나지 않고서는 국가경쟁력이 선진국을 따라갈 수 없다. 늦어지니 불안하다. 절박한 심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과학정책을 고대해 본다.
정문성 울산대 물리학 교수
2007-06-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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