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무이자 할부 판매와 독과점/이상묵 삼성금융연구소 상무

[열린세상] 무이자 할부 판매와 독과점/이상묵 삼성금융연구소 상무

입력 2007-04-26 00:00
수정 2007-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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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삼성금융연구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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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정위의 고위 당국자들이 연이어 현대차의 독과점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현대차가 기아차와의 기업결합 이후 시장점유율이 70%를 상회하고 있어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업결합 이전에 소비자들이 누렸던 무이자 할부판매 혜택이 기업결합 이후 사라진 점을 그 징후로 제시하고 있다.

공정위의 이런 견해는 너무나 의외다. 소비자들 중에 현대차가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서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길거리에 나가 보면 현대, 기아, 대우, 르노삼성, 쌍용과 같은 국산차들이 뒤섞여 있을 뿐 아니라 외제차들도 부쩍 눈에 띈다. 과거에 비해 경쟁이 심하면 심했지 경쟁이 제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무이자 할부판매가 사라졌다고 독과점 폐해를 의심하는 시각도 어설프다.

사실, 무이자 할부판매는 명목상의 판매가격은 유지하면서 실질 가격을 할인해주는 다양한 판매기법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요즘도 자동차 대리점에 가면 다양한 사은품을 무상으로 끼워준다. 흥정을 잘 하면 내비게이션 장치와 같은 상당한 고가품을 받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무상으로 제공하는 모든 상품이나 서비스는 그 비용이 원가에 가산돼 결국 가격에 반영되게 마련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자동차 가격을 내리는 간단한 방법을 놔두고 이렇게 번거로운 방법을 쓰는 것은 가격 차별화 정책의 일환이다. 소비자의 특성에 따라 소비자별로 실질적으로 다른 가격을 적용함으로써 수입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가격에 민감하지 않은 소비자에게는 명목상 가격을 다 받고, 집요하게 흥정하는 소비자에게는 그 강도에 따라 다양한 사은품을 제공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다른 가격을 적용하는 것이다. 명목상 가격에는 사은품에 드는 비용이 포함돼 있으므로 사은품을 주지 않는 경우에 비해 높게 책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격 차별화의 관점에서 보면 무이자 할부판매는 별로 효율적이지 못하다. 가격 차별화의 핵심은 소비자의 특성에 따라 다른 가격을 적용하는 데에 있는데, 무이자 할부판매는 그러한 정책의 존재가 쉽게 노출돼 많은 소비자들이 적용을 원하고, 원하는 소비자들에게는 동일한 판매조건을 적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무이자 할부 판매 방식은 새로운 모델의 출시에 앞서 구모델 재고의 소진을 촉진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거 현대차가 무이자 할부판매를 자주 적용했던 것은 팔리지 않아 밀어내야 할 재고가 쌓여있는 경우가 왕왕 있었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요즈음에는 무이자 할부판매를 하지 않는 것은 재고가 쌓이는 일이 좀처럼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현대차가 무이자 할부판매를 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을 수도 있다. 최근 들어 자동차 회사는 과거와 달리 별도의 금융회사를 통해 할부금융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판매금융 업무를 전문화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현대차의 경우 현대캐피탈을 통해 할부금융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이자 할부판매를 하려면 계열사간 거래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할부금융회사가 소비자에게 면제해준 이자를 자동차 회사가 대신 물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거래는 계열사간 부당지원 논란을 야기할 소지가 다분하다. 대신 물어주는 이자의 수준이 적정한지에 대해 공정위로부터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결국, 무이자 할부금융이 사라지게 한 데에 공정위가 한몫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상묵 삼성금융연구소 상무
2007-04-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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