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수요시위 1400회/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수요시위 1400회/이순녀 논설위원

이순녀 기자
이순녀 기자
입력 2019-08-14 22:06
수정 2019-08-15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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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3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현장 주변은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도 몰려드는 행인의 발길을 막지 못했다. 누군가 나눠준 나비 모양 색종이가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다. 바닥에 주저앉은 시민들의 머리와 어깨에 어느새 노란 나비의 물결이 일렁였다.

어제 정오에 열린 1400회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의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1월 8일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시작한 지 꼬박 27년.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이 있던 곳, 지금은 평화의 소녀상이 의연히 자리한 곳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외쳐 왔을 기억과 연대의 함성을 떠올리니 숙연함이 밀려왔다.

“일본 군대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던 김학순입니다. 신문에 나고 뉴스에 나오는 걸 보고 내가 결심을 단단하게 했어요. 아니다. 이거는 바로잡아야 한다. 도대체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나오게 되었소.” 김학순 할머니의 피맺힌 증언은 숨죽여 지내던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의 연쇄 증언으로 이어졌고, 이는 국제사회에 일본 정부의 반인권적 범죄 행위를 널리 인식시켰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여성단체들은 2012년 12월 대만에서 열린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매년 8월 14일을 ‘세계 위안부 기림일’로 정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코소보 등 내전국의 전시 성폭력 범죄 피해자들과도 연대하는 등 인권·평화 운동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1400회 수요시위에는 해외 11개국 24개 도시의 시민들이 동참해 공감과 지지를 나타냈다. 한국 정부는 뒤늦게 법을 제정해 지난해부터서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을 공식 국가기념일로 기리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20명이다. 지난 1월 별세한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해 올해 세상을 떠난 이들만 벌써 다섯 분이다. 남은 생존자들이 더는 억울함 속에 눈을 감지 않도록 가해자로부터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받아 낼 책임과 의무가 한국 정부에 있다. 안타까운 것은 국내에서도 위안부를 부정하는 망언을 일삼는 극우 지식인과 단체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위안부 강제 동원은 없었다”는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 한다. “내가 증인”이라는 생존자의 외침이 이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지 참담할 뿐이다.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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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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