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동(冬)장군/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동(冬)장군/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6-01-19 20:52
수정 2016-01-1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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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의 김장김치 한 포기에도 겨울이 익는다. 풋내로 뻗대던 모양새가 직수굿해졌다. 비린 젓국에 알맞게 삭아지는 때. 집집에서 김치는 온실의 화초 대접이다. 속성 발효시킬 것, 시간을 두어 익힐 것이 마음대로다. 냉장 기계의 버튼 하나로 시시해진 일이다.

겨울 김치를 익히는 일은 시시하지 않았다. 시골 우리 집에서는 마당 귀퉁이 감나무 밑에 김장독이 묻혔다. 찬바람 나면 독 자리부터 팠다. 젓국의 농도로 앞뒤 먹을 순서를 정해 묻으면 그날로 ‘관계자 외’ 금지 구역. 무른 공기에 군둥내가 김칫독째 잡치지나 않을까, 푹한 날에는 뚜껑을 열지도 않았다. 한낮까지 짜글짜글 살얼음이 버티는 날. 떠들린 배추 포기에 손도장이 찍히도록 꼭꼭 눌러 군물을 단속했다.

겨울의 맛은 찬 맛이다. 칼바람에 단련돼 짱짱했던 동치미 국물은 지금 어디에도 없는 맛. 온 신경줄 홀쳐매던 죽비의 맛. 따뜻해진 겨울은 우리 오감마저 온실에 묶는다. 고드름 녹아 낙숫물 소리, 얼음장 갈라지는 소리, 눈 다발에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 보고 듣지 못해 말할 수 없어지는 겨울의 이야기.

모처럼 동장군이 오셨다. 버선발로 맞아도 모자랄 그분이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6-01-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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