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청소년 더불어 사는 능력 키워라

[사설] 한국 청소년 더불어 사는 능력 키워라

입력 2011-03-28 00:00
수정 2011-03-28 00:3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중등교육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민주시민으로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갖추도록 가르치는 데 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동시에 나만이 아닌 다른 이들을 되돌아보는 삶의 태도를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 진학에만 몰입하는 사교육과 다른 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고교 청소년생들에게 배려, 양보, 협동, 타협 등과 같은 공동체 의식은 결여된 측면이 적지 않다. 한국교육개발원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청소년의 사회역량지표는 세계 36개국 중 35위에 그쳤다. 세부 항목인 사회적 협력과 관계지향성에서는 꼴찌를 차지했다.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연구 결과는 2009년 국제교육협의회(IEA)가 세계 36개국의 중학교 2학년 14만 600여명에게 설문한 국제 시민의식 교육연구를 근거로 삼았다. 문화·사회·경제적으로 이질적인 상대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능력인 사회역량지표의 상위권에는 태국, 인도네시아, 아일랜드, 영국 등이 포함됐다. 우리 청소년들은 갈등의 해결을 위한 지식을 중시하는 갈등관리에서는 덴마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지식 개발에 함몰된 바람에 다양한 이웃들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능력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나아가 모든 게 ‘나’에게 맞춰진 탓에 정부와 학교에 대한 불신도 컸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전체 평균 62%의 3분의1인 20%, 학교는 평균의 절반을 약간 웃돈 45%에 불과했다.

김광철 서울시의원, 몽촌해자 음악분수 재설치 해법 찾는다… 관계기관 합동회의 개최

서울시의회 김광철 시의원(국민의힘·송파2)이 지난 18일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올림픽공원 몽촌해자 음악분수대 재설치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관계기관 합동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회의는 김 의원이 지난 8월 27일 제339회 서울시의회 임시회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 올림픽공원 내 노후 음악분수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관광콘텐츠로 재조성할 것을 제안한 데 따른 후속 논의다. 김 의원은 5분 자유발언에 그치지 않고 이후 서울시와 송파구,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관계기관 간 협의를 추진했으며, 이번 합동회의에서는 서울시 공모사업 활용 가능성과 기존 시설 철거, 신규 시설 설치 및 향후 운영·관리 주체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송파갑 박정훈 국회의원과 ▲김광철 서울시의원을 비롯해 ▲송파구의회 전정 행정자치위원장 ▲박순옥 재정복지위원회 부위원장 ▲김언주 도시건설위원회 의원이 참석했다. 서울시에서는 ▲관광정책과 하동준 과장 ▲수변감성도시과 조현범 수변정책팀장 ▲치수안전과 김덕순 하천생태팀장 ▲한성백제박물관 고수봉 총무과장이, 송파구에서는 ▲문화유산과 권순영 과장과 ▲치수과 강대양 과장이 참석했으며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는 강기원 레거시사업실장이 참석해 기관별
thumbnail - 김광철 서울시의원, 몽촌해자 음악분수 재설치 해법 찾는다… 관계기관 합동회의 개최

청소년들의 부족한 공동체 의식을 더 이상 묵인하거나 방치할 수 없다. 그렇다고 청소년만을 탓할 수 없다. 오히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시스템과 교육 풍토의 피해자다. 뛰어난 친구들을 칭찬하고 인정하기보다 경쟁 상대로 여기는 상황에서 더불어 사는 의식을 기대하기란 무리다. 결국 공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정부는 학벌의 병폐를 깨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능력에 따른 차이는 인정하되 학력에 의한 차별은 금지해야 한다. 학교는 성적 줄세우기보다는 전인교육에 비중을 두고,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외향적 출세보다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의 구축은 사회적 비용과 맞물려 있는 만큼 우리 모두 깊이 고민해야 한다.

2011-03-28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 2026 아이치 나고야 아시안게임
  •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