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석의 서울살이] 고향세와 고향

[노주석의 서울살이] 고향세와 고향

입력 2018-02-09 21:04
수정 2018-02-0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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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이런저런 자리에서 고향세가 화제에 올랐다. 말 그대로 고향이나 연고지에 기부를 하고 상응하는 세액공제나 특산품을 받자는 제도다. 공무원 월급도 못 주는 고향을 돕자는 취지다. 다음주로 다가온 설날, 고향에서 “고향세 도입에 찬성하라”는 압력성 권유를 친지와 친구로부터 받을지도 모르겠다. 생면부지의 중동 난민에게도 기부하는 세상이 아닌가.

고향세의 원조는 일본이다. 오줌세·결혼세·난로세·창문세·수염세·방귀세·차세·설탕세 등 각종 명목의 이색 세금을 매겼다가 조세 저항을 일으킨 서구와 달리 일본에선 히트 세금이 됐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은 한국과 중국, 일본 세 이웃 나라의 국민성을 놓고 “중국인은 현실적이고, 일본인은 공리적이며, 한국인은 신비주의적”이라고 비유했다. 이타적 성향의 일본인에게 어울리는 세금으로 보인다.

우리에게는 매우 논쟁적 사안이다. 작명부터 ‘고향사랑 기부금’이라고 물타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물 사용료를 수도세, 전기사용료를 전기세라고 부르는 게 한국적 정서다. 아무리 교묘하게 이름을 바꿔도 고향세라는 표현을 갈아치우지 못할 것이다. 고향세가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수도권 및 광역시의 재정 감소 우려가 관건이다. 인구 5000만명 중 절반이 몰려 사는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재정 감소가 필연적이다. 경기도는 7274억여원, 서울은 1753억여원의 손실이 예견됐다. 타 지역 출신자가 많은 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 등 6대 광역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인구의 절반 가까운 2213만명이 출생지를 떠나 다른 곳에 산다. 이촌향도(離村向都)의 국가다. 출신지와 지역 정서에 호소하는 고향세가 지금도 우리 사회의 대표적 적폐인 지역연고주의를 더 부추길 수 있다. 열악한 지방의 곳간을 채우려는 단순 재정 논리보다 더 심각한 부작용이 걱정이다.

지속성과 실효성에도 의문부호가 따라붙는다. 고향의 정의와 개념이 문제다. 고향의 존재와 존속 여부에 대한 물음이다. 2014년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91.7%이다. 선진국 평균 80%, 전 세계 평균 54%와 비교할 때 무지막지한 수치다. 축복인지 재앙인지 알 수 없지만 몇몇 두메산골 주민을 빼면 죄다 도시민이 됐다. 특히 대도시에서 나서 사는 사람에게 고향이란 구시대의 사치스러운 유물에 불과할지 모른다.

나리타 류이치라는 일본 학자는 저서 ‘고향이라는 이야기’에서 오사카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도쿄로 이주한 자신을 ‘도시 태생 제2세대’라고 표현했다. 심지어 ‘고향이 존재하지 않는 정신’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고향의 비밀을 19세기 이후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조성한 ‘국민국가의 주술력’에서 찾았다. 그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짙은 국민국가와 고향 간의 상이성과 보완성을 파헤쳤다. 고향이란 창출된 개념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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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를 의미하는 노스탤지어(Nostalgia)는 그리스어 ‘nostos(귀향)’와 ‘algos(고통)’를 조합한 말이다. 본래 17세기 고향을 떠난 스위스 용병들이 앓은 정체불명의 질환을 이르는 정신병리학 용어였다. 가브리엘 파크레라는 미래학자가 이를 거꾸로 옮겨 ‘Aiglatson’이란 단어를 만들었다. 미래를 꿈꾸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포부로 정의했다. 가장 과거지향적인 단어를 미래지향적 용어로 탈바꿈시켰다. 의학이나 미래학의 영역에서 향수는 질환과 개조의 대상이다. 고향이나 고향세의 앞날이 밝지 않은 까닭이다.
2018-02-1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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