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박원순 시장도 변해야 한다/한준규 사회2부 차장

[데스크 시각] 박원순 시장도 변해야 한다/한준규 사회2부 차장

한준규 기자
입력 2015-04-20 18:00
수정 2015-04-2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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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규 사회2부 차장
한준규 사회2부 차장
얼마 전 서울시청 로비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스치듯 만났다. 애써 웃어 보이며 손을 잡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피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하루 수십 개의 일정을 소화하는 바쁜 시장이라곤 하지만, 민선 6기 출범 8개월이란 시간을 감안하면 지나치다 싶었다. 지난 6·4 지방선거운동 기간 동안 하루 2~3시간을 자고도 버텼던 박 시장이었다.

나이 탓일까. 아니다. 박 시장이 ‘똑부형’이라는 데 원인이 있다. 직장 상사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똑부형(똑똑하고 부지런한), 똑게형(똑똑하고 게으른), 멍부형(멍청하고 부지런한), 멍게형(멍청하고 게으른)이다.

혼자서 서울시의 모든 것을 챙기려는 박 시장은 누가 뭐래도 똑부형이다. 해야 할 일이 빼곡히 적힌 포스트잇 수십 개가 책상에 붙어 있고, 지나가다 보도블록이 깨져 있으면 바로 전화해서 고치라고 지시한다. 또 자신의 경험과 배움 등에서 나온 수백 가지 정책을 각 실·국에 전달하고 진행을 체크한다. 서울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신이 책임지려 한다. 물론 서울시의 수장으로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도 몇 년 동안 재충전 없이 일에 올인한다면 방전되고 지치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시민은 한 달짜리, 일 년짜리 시장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4년 동안을 꾸준히 서울을 변화시켜 줄 사람을 원한다.

박 시장도 똑부가 아니라 ‘똑게형’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똑게형은 부하 직원을 믿고 일을 맡기며 큰 흐름만을 정리해 주는 이상적인 상사다. 중요한 몇 가지 정책만 챙기고 나머지는 직원을 믿고 과감하게 내려놓는 똑똑하지만 좀 게을러 보이는 시장이 돼야 한다. 자신을 위해서뿐 아니라 서울시를 위해서도 변신이 필요하다.

지난달 3일 박 시장은 비서실을 축소하고 실·국장의 대면 보고를 늘리겠다고 했다. 그동안 비서실이 각종 서울시 현안을 직접 챙기면서 약해진 실·국 공무원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20여명의 정부 라인보다는 4만여 서울시 직원들과 일을 하겠다는 현명한 선택이다.

‘똑부형’ 시장 덕분에 300여개가 넘는 지시 사항을 처리하느라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실·국이 대부분이다. 이들도 박 시장처럼 지치고 피로도가 높다. 이제 이들의 피로도를 줄여 줘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수백 개의 지시 사항을 붙여 놓고 하나씩 처리한다면 그들은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이다. 불평과 불만만 쌓일 것이다.

또 초등학생조차 시켜서 하는 일의 성과는 별로지만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신바람을 낸다. 시 직원들도 스스로 일을 기획하고 만들어 갈 때 엔도르핀이 솟고 밤새 일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박 시장이 ‘똑게형’으로 변해야 하는 이유다.

비서실은 축소됐지만 아직 몇 가지 정책은 엇박자를 내고 있다. 몇몇 자치구와 갈등을 겪고 있고 서울역 고가 재생사업, 제2롯데월드 재사용 승인 등 현안 사업도 제자리걸음이다. 최근 열린 현장시장실도 반쪽 행사로 치러졌다. 똑게형 시장은 조바심을 버려야 한다. 2년 반 동안 시키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 직원들이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소수의 정무라인이 아니라 서울시 모든 직원이 신바람 나게 일할 때 서울시가 발전하고 박 시장 자신이 편안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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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hi@seoul.co.kr
2015-04-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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