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빅데이터(Big Data)시대’의 정치/진경호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빅데이터(Big Data)시대’의 정치/진경호 정치부장

입력 2012-02-14 00:00
수정 2012-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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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여년 전, 그러니까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유행한 1995년 무렵이니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기자들에게 ‘유령’으로 불린 국회의원 L씨가 있었다. 분명 그 자리에 없었는데, 사진을 찍어 보면 늘 사진 주인공 옆자리에 떡하니 붙어 서서 씨익 웃고 있었다. 귀신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사진 한방 찍히려고, 그래서 신문에 얼굴 한번 내밀려고 사진기자의 손동작 하나에 온몸을 던지던 시절의 정치가 참 오래도록 있어 왔다.

진경호 논설위원
진경호 논설위원
세상, 변했다. 사진기자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됐다. 내가 찍어 내가 페이스북에 올리고, ‘친구’들이 퍼날라 준다. 신문사 편집국장이나 정치부장 몰라도 정치, 할 수 있다. 우리 정봉주 풀려나게 잘 좀 써달라며 신문사로, 방송사로 달려가 죽칠 필요가 없다. 국회 방호원들과 떼로 엉켜 멱살 잡는 퍼포먼스 한번 하면 열혈 정봉주 팬덤들이 알아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리고 유튜브로 중계한다. 신문? 됐다.

3년 전엔 어땠을까. 소녀시대를 따라 ‘지~지~지~지~’할 때니까 바로 엊그제다. ‘나꼼수’,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있었고, 그가 앱을 내놓았고, 그리고 비로소 나꼼수가 나왔다. 잡스가 없었으면 김어준은 지금도 ‘씨바, 씨바’하며 ‘딴지일보’에다 열심히 갈겨대고 있었을지 모른다.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들 만큼 심심하지 않았더라면 ‘가카새키 판사’ 이정렬도, ‘빅엿 판사’ 서기호도 없었을 것이다.

세상은 변했고 불과 몇 달 새 누구는 ‘권력’이, 누구는 ‘담론’이 됐다. 롤러코스터 세상이다. 사이버에서 여론이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세상, 이를 통해 사이버 여론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됐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터넷 정보량은 지난해 1,800,000,000,000,000,000,000바이트를 찍었다고 한다. 1.8제타바이트, 한국인 4900만명이 1분마다 트위터에 3개의 글을 18만년 동안 쉬지 않고 올려야 하는 양이라니 상상이 되는가. 이마저도 5년 뒤엔 10배에 이를 것이라니, 맙소사.

이 빅데이터 시대에 굼뜨기 그지없는 영역이 정치다. 딱하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된 청년 이준석이 바람을 넣어 각 후보들의 SNS 소통지수를 4·11 총선 공천에 반영하겠다고 법석을 떨고, 그동안 변변한 계정 하나 없던 의원님들이 부랴부랴 전문업체까지 동원해 팔로어를 ‘양산’해 내느라 난리를 치는 모습은 개그콘서트를 볼 필요가 없게 만든다.

앨빈 토플러 말이 맞았다. 기업은 100마일, 정치는 3마일이다. 입소문이 아니라 자판소문의 시대, 기업들은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을 통해 SNS와 블로그·카페·유튜브·포털 같은 사이버 세계를 떠도는 여론을 캐고, 그에 맞춰 실시간 대응하기 시작했다. 태평양 건너 미국만 해도 오바마가 ‘Pillbox 프로젝트’를 통해 빅데이터에 담긴 민심을 정부 정책에 담아 왔고, 연말 대선을 앞두고는 별도의 빅데이터 선거팀을 가동하고 있다. 미트 롬니, 뉴트 깅리치 같은 공화당 대선주자들도 SNS 고수들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그리고 한나라당이 좀 더 일찍 빅데이터를 알았다면 무상급식 주민투표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없었을지 모른다. 뒤늦게 “아침급식도 무상으로 하자.”는 과유불급형 부화뇌동도 없었을 것이다. 나경원이 ‘1억 피부숍’의 그물에서 좀 더 빨리 탈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트위터 이용자가 544만명, 페이스북 이용자가 536만명이다. 통계청 발표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 그러나 방향은 정해졌다. 세상은 빅데이터 시대로 들어섰다. 빅데이터에 세상이 있고, 민심이 있다. 정책이 있고, 전략이 있고, 선거 승리의 단서가 있다. 이런 것 다 덮어두고 민심을 몰랐네, 소통이 안 되네 하며 드잡이하는 2012년 초입 여의도의 풍경이 안쓰럽다. 후보가 아니라 정당의 소통지수를 재야 한다. 기업에 앞서 정치가 빅데이터를 파야 한다. 많이 늦었다.

jad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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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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