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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기업인과 행동과 말/김성곤 산업부 전문기자

[데스크 시각] 기업인과 행동과 말/김성곤 산업부 전문기자

입력 2011-05-06 00:00
업데이트 2011-05-0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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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2월 고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이 국민당을 만들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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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산업부장
김성곤 산업부장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98년 6월 정 전 명예회장은 소 500마리를 몰고 방북한다. 집에서 소 판 돈 70원을 들고 상경해 일가를 이룬 그가 고향에 뭔가 기여하겠다는 일념에서 비롯된 발걸음이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나느냐.’는 질문에 ‘그날 할 일이 즐거워서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런 열정으로 현대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굴지의 기업군으로 일궈낸 기업가 정주영이 새로운 꿈(?)을 꾼 것은 70대 때였다. 필자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점상으로는 뭔가 목표를 달성했다는 만족감이 들 때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이 두 번의 일탈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1992년 대선 이후 김영삼 정부에서 혹독한 세무조사를 받아야 했고, 소떼 방북과 금강산 사업 이후에는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그룹이 쪼개지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요즘 삼성그룹이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밖으로는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시작된 정보기술(IT) 업계의 새로운 조류와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다. 다행히 순발력 있게 대응하고 있기는 하지만 싸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하드웨어 비중이 큰 삼성으로서는 버거운 싸움이기 때문이다. 안에서는 삼성 독주에 대한 견제와 우려로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단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발언이 제공했다.

이 회장은 지난 3월 10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기자들이 이익공유제에 대한 생각을 묻자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라 경제학 공부를 해 왔으나 이익공유제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답한 데 이어 현 정부의 경제성적표 질문에는 “과거 10년에 비해 상당한 성장을 해 왔으니… 낙제점은 아니죠.”라고 답했다. 기업가로서는 능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삼성이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후 정치권과 정부의 거센 반격을 받아야 했다.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 “완전 오해다.”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여진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최근 진행 중인 삼성 계열사 세무조사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이 때문이다.

이 회장의 발언이 화제가 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1995년엔 “기업은 이류, 공무원은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질타한 것이 대표적이다. 바른말이었지만 한동안 역풍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 이 회장은 한동안 발언을 삼가고 침잠했다. 그런 이 회장이 요즘 들어 부쩍 기업은 물론 세상에 대한 언급이 잦아졌다. 낙제점 발언도 그중 하나다. 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나이 얘기도 나오고, 정 전 명예회장처럼 일가를 이룬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는 분석도 있다.

물론 이 회장의 말이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회장은 삼성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변곡점이 될 만한 발언들로 오늘의 삼성이 있게 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는 1993년 신경영 선언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그 화살이 밖으로 향했을 때에는 종종 갈등을 유발했다. 재계 원로로서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나 조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경제단체장들의 몫으로 남겨 두는 것은 어떨까. 굳이 필요하다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는 것도 방법이다.

요즘 들어 부쩍 삼성 안팎에서 ‘삼성의 위기’론이 퍼지고 있다. 그 때문인지 이 회장은 일주일에 두 번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출근하면서 현안을 직접 챙긴다고 한다. 전에 없던 일로, 삼성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바람직한 변화로 평가한다.

2010년 기준 삼성그룹 78개 계열사의 총 매출은 254조 6000억원으로 우리 경제주체들의 총산출에서 9% 안팎을 차지하고,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를 웃돈다. 삼성이 한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더불어 이 회장도 이젠 삼성 경영의 성과를 통해 세상과 소통했으면 한다. 아직 만족할 때가 아니다.
2011-05-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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