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구원투수의 조건/장진복 전국부 기자

[마감 후] 구원투수의 조건/장진복 전국부 기자

장진복 기자
장진복 기자
입력 2023-04-21 01:04
수정 2023-04-21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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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복 전국부 기자
장진복 전국부 기자
4대13으로 대패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을 본 야구팬이라면 직감했을 것이다. ‘아, 한국 야구는 망했다. 미래가 없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그게 어렵다면 이길 뻔이라도 해야 하는 숙명의 한일전이다. 일본과의 실력 차이 앞에 우리 대표팀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가 부족해서였을까. 에이스 선발투수 김광현의 노장 투혼이 3회까지밖에 닿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베이스에서 발을 떼고 안타 세리머니를 하다 어처구니없이 아웃 판정을 받을 만큼 그저 우리에게 내내 운이 따르지 않아서였을까.

이순철 해설위원은 “(투수들이) 스트라이크를 제대로 던지지 못해 계속 실점 위기를 맞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꼬집었다. 10명의 투수가 등판해 186개의 공을 던졌지만 과감하고 정확한 공은 거의 없었다. 이 해설위원은 “이렇게 해선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다”며 “참담할 정도”라고 했다.

한낱 공놀이를 향한 일침인데 현재 대한민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상들과 꼭 맞아떨어진다.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수출, 그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K반도체’가 위기라고 하는데 구원투수가 없다. 대통령부터 모든 공직사회가 말로는 혁신, 혁신을 외치지만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스타트업들이 혁신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규제 장벽을 넘지 못하고 쓸쓸하게 마운드에서 내려간다. 이념·성별·세대별로 끊임없이 편 가르고 쪼개지는 사회 분위기는 직구를 던지지 못하게 만든다.

위기가 아닐 때도 없었지만, 유독 정치권은 당면한 위기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눈치다. 각종 설화가 이어지는 여당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에 맥을 잃은 야당도 마찬가지다. 위기는 구원투수의 등판을 앞당기곤 한다. 정치의 언어에서 구원투수는 다른 말로 잠룡, 차기 주자라고 불린다. 최근 이들의 목소리가 부쩍 커지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위기의 현실을 방증하는 듯하다.

잠룡 그룹으로 묶이는 오세훈 서울시장도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다. 그는 서울시 출입기자들에게 “(대권 대신) 서울시장 5선에 도전할 수 있다”는 뜻을 자주 내비친다. 그럼에도 행정가이자 정치인으로서 서울, 넓게는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도록 부지런히 뛰어야 할 의무가 있다.

시대는 시원한 스트라이크를 원한다. 그렇다 해도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은 이들과 의지할 곳 없는 약자들에게는 섣부르게 직구를 내리꽂지 않았으면 한다. 선발보다 주목받지 못해도 꾸역꾸역 자기 공을 던지며 내공을 쌓아야 한다. 약자와 동행하겠다는 마음이 꺾이지 않고, 베이스에서 발을 떼지 않도록 초심을 지켜야 한다.

‘천원의 아침밥’ 지원을 넘어 대학에 다니지 않는 청년들과 소외계층의 밥상에 관심을 갖는 것. 대관람차가 돌아가고 곤돌라가 오가는 삐까뻔쩍한 한강에 몸을 던지지 않도록 시민들의 마음건강과 안전을 챙기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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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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