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독재미화 비판 자초하는 ‘붉은펜’ 교육부/이범수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독재미화 비판 자초하는 ‘붉은펜’ 교육부/이범수 사회부 기자

입력 2013-12-02 00:00
수정 2018-01-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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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펜 선생님’ 교육부가 다시 펜을 꺼내들었다. 지난달 29일 교육부는 리베르스쿨 교과서를 제외한 7종 고교 역사 교과서의 내용 가운데 총 41건에 대해 수정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앞서 8종 교과서 집필진이 교육부로부터 829건에 대한 수정·보완을 권고받고 제출한 수정·보완 대조표를 검토한 결과다. 이에 대해 한국사교과서집필진협의회는 수정명령을 거부하고 가처분신청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범수 사회부 기자
이범수 사회부 기자
문제는 역사적 ‘사실’에까지 붉은 펜을 그었다는 점이다. 수정명령 내용을 보면 교육부는 미래엔 교과서 322~337쪽 자유 민주주의 시련과 발전 부분에 나오는 소주제명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다니!’, ‘피로 얼룩진 5·18 민주화 운동’, ‘궁지에 몰린 전두환 정부’와 같은 표현들을 ‘학생들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바꾸라고 명령했다.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다’란 표현은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씨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하다 숨진 뒤 경찰이 사인을 숨기기 위해 거짓으로 발표한 내용으로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교육부의 인식이다. 심은석 교육부 교육정책실장은 “‘탁 치니 억하고 죽다니’ 등은 신문에도 난 얘기지만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제목보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갖도록 소제목을 바꿔 달라고 수정 명령했다”고 말했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사건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제목을 ‘부정적’이라고 판단했다는 사실은 ‘독재 미화’라는 비판에서 비켜 서기 힘든 대목이다.

교육부는 실질적으로 수정·보완 대조표를 검토하고 붉은 펜을 꺼내든 수정심의위원회 참여 위원 명단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수정심의위원들이 공개를 원치 않는다는 게 이유다. 수정심의위원회는 413개 단체 또는 기관에서 추천받은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지난달 16일부터 27일까지 검토에 참여했다. 하지만 명단이 공개되지 않으면 계속해서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편향된 시각을 가진 인사나 비전문가가 수정심의위원회에 여럿 참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탁 치니 억하고 죽다니’ 등의 소주제 변경은 이런 우려를 현실화하고 있다.

“정확한 사실에 입각한 올바른 교과서를 보급하겠다.”, “학생들이 바람직한 역사인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겠다.”

교육부가 8종 고교 역사 교과서의 수정·보완 권고를 하던 지난 9월부터 수정명령을 내린 현재까지 끊임없이 해 온 말이다.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수정심의위원회의 위원 명단을 공개해 수정명령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진정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가 무엇인지 골몰해야 한다.

bulse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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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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