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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EPB+MOF/곽태헌 논설위원

[씨줄날줄] EPB+MOF/곽태헌 논설위원

입력 2012-01-18 00:00
업데이트 2012-01-18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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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획원(EPB)과 재무부(MOF)는 경제부처의 양대산맥이었다. 많은 경제부처 엘리트들은 EPB와 MOF로 나뉘어 파워게임도 했다. 정부 출범 직후인 1948년 11월 발족한 MOF의 핵심은 금융과 세제 쪽이다. 1961년 7월 발족한 EPB의 핵심은 예산과 기획분야다. 1961년 5·16쿠데타 직후 군사정권은 경제발전을 주요 목표로 정하고 EPB를 만들었다. 1963년 경제기획원 장관은 부총리로 격상돼 정부 내 위상이 더 강화됐다. EPB는 경제 정책을 기획·총괄하고, 경제개발 5개년계획 등 중·장기 경제사회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경제기획원 장관이 부처를 통솔할 수 있었던 것은 부총리라는 점도 있었지만, 부처의 예산을 꽉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MOF 관료들은 다소 보수적인 반면 EPB 출신들은 개방적인 편이었다. 업무의 성격상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MOF에서는 상하관계가 비교적 엄격했지만, 토론문화가 발달된 EPB에서는 상하관계가 비교적 느슨했다. MOF에서는 과장들이 회식할 때, 그 자리에 국장이 없더라도 욕하지 않았지만 EPB 과장들은 그 자리에 국장이 있음에도 대놓고 잘못을 지적했다고 한다. 국장의 지시라고 고분고분하게 듣거나 따르지는 않았다.

EPB와 MOF 모두 독특한 문화와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4년 12월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되면서 사라져 가고 있다. EPB는 다른 부처와는 달리 특정 집단을 봐줄 필요가 없어 비교적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다른 부처의 업무를 조정하고 간섭했지만 이러한 것을 귀찮게 여긴 부처들의 반발이 거세진 게 통폐합된 주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물론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에서 민간 주도로 바뀌어 가는 시대적인 변화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재경원 출범과 함께 EPB 출신과 MOF 출신을 섞는 ‘화학적 인사’가 이뤄졌다. 국장이 MOF 출신이면 과장들은 EPB 출신을 기용하는 식이었다. 최상의 조합은 국장은 EPB, 과장은 MOF 출신으로 짜여졌을 때다. EPB 출신 국장이 재량권을 주니 MOF 과장들은 좋아했고, MOF 과장들은 상사를 깍듯하게 모시니 EPB 국장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에 MOF 출신인 이석준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이 내정됐다. MOF 출신 예산실장은 처음이다. 화학적 인사도 좋고, 융합 인사도 좋지만 차기 정부에서라도 EPB를 부활시켜 국가의 큰 밑그림과 장기전략을 보다 체계적으로 짜야 하지 않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2012-01-1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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