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반(絆)/임태순 논설위원

[씨줄날줄] 반(絆)/임태순 논설위원

입력 2011-12-14 00:00
수정 2011-12-1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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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나 재해 등 대형 사고를 겪고 나면 인간은 큰 충격을 받는다. 천안함 폭침사건을 겪은 장병들은 제대 이후에도 사고 당시의 참혹한 광경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거나 사고 당시를 연상시키는 물체를 보고 공포에 빠지기도 한다. 9·11테러 이후 뉴요커들 역시 한동안 비극적인 사건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뉴욕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항공기를 이용한 자살테러로 형체도 없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본 시민들은 넋을 잃었다. 테러 닷새 뒤 뉴욕타임스 기자 알렉스 쿠친스키는 ‘무표정을 벗어버린 뉴욕’이란 기사를 썼다. 길에서 서로 마주쳐도 상대를 무시하고, 지하철에서 멍하니 맞은편만 바라보던 뉴욕 시민들이 충격적인 사건에서 살아난 이후 관계를 형성하고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시선을 교환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생존한 것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며 서로를 위로하면서 연대감, 공동체 의식을 가졌다는 것이다. 물론 뉴욕 시민들은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다시 예전의 무표정한 얼굴로 되돌아갔다.

현대인들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고독해지고 있다. 전통사회는 가족, 마을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고 모내기, 추수 등 서로 힘을 합쳐야 하기 때문에 외로움이라는 말이 스며들 틈이 없었다. 그러나 도시인들은 칸막이가 쳐지고 원자화되면서 고독, 소외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얼마 전 서울시 통계를 보면 1인 가구가 24.4%로 가장 많을 정도로 가족 해체가 본격화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무연사(無緣死)가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독신자들이 늘면서 아무런 연고 없이 혼자 죽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연사로 장례문화가 간소화돼 장례비용이 최근 10년 동안 3분의2가량 감소하고, 도쿄의 경우 장례식 없이 바로 화장하는 직장(直葬)의 비율이 지난해 30%에 이르렀을 정도다.

일본에서 올해를 상징하는 한자로 ‘반’(絆)자가 선정됐다고 한다. 일본어로 ‘기즈나’로 읽는 이 한자는 사람 사이의 정과 유대를 뜻한다. 올해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등 대형 재해를 겪으면서 충격을 받은 일본인들이 가족과 동료 사이의 정을 중요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고통을 나누고 위로해 주며 보듬어 주면 큰 힘이 된다. 굳이 큰일을 겪지 않았더라도 주위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한 해를 마무리하면 세밑이 더욱 훈훈하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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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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