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그린 반도체’ 생명연구자원을 확보하자/이연희 서울여대 교수·연구소재중앙센터장

[시론]‘그린 반도체’ 생명연구자원을 확보하자/이연희 서울여대 교수·연구소재중앙센터장

입력 2010-04-23 00:00
업데이트 2010-04-23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우리가 먹는 약의 40%는 생물을 이용해서 만들어진다. 주목에서 만든 천연 항암제 택솔, 버드나무에서 만든 인류 최고의 명약 아스피린을 비롯해 최근에는 허브의 일종인 스타아니스에서 만든 타미플루가 있다. 또 파리에서 항생제를, 홍합에서 생체접합체를, 지렁이에서 혈전용해제를 만들고 있다. 그래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1000만개의 생물 종 가운데 우리가 활용하는 생물 종은 0.4%에 해당하는 4만개 정도이다. 아직도 활용할 수 있는 생물이 무궁무진하다는 얘기다.
이미지 확대
이연희 서울여대 교수·연구소재중앙센터장
이연희 서울여대 교수·연구소재중앙센터장


하지만 생물체를 그대로 유리병에 넣어 보관한다고 자원이 되는 것이 아니다. 수술로 제거된 암 조직을 신약 개발에 사용하려면 30분 내에 액체질소로 얼리고 잘라서 보관해야 한다. 어떤 암이 몇 기인지, 어떤 상태인지, 항암제에 내성은 있는지 등 다양한 연구 결과 얻은 정보가 더해져야 비로소 연구자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개구리도 포르말린에 담긴 표본은 전시용에 불과하다. 개구리 타액·피부·장기를 따로 보관하고, 유전자를 추출하고, 필요하면 대량 배양을 해야 연구자원이 된다.

이렇게 생물을 자원화하기까지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 국가나 한 기관에서 모든 생물을 보관하고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제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토가 좁고 종 다양성도 적어 생명자원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지만, 생명공학(BT)이 앞서 있고 연구소재 은행 통합 운영체계가 우수해 많은 나라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지도자로서 참여해야 한다.

생명연구 자원의 활용 범위가 다변화하면서 관리에 대한 신뢰성도 강조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생명자원 관련 국제 협의체들에서는 생명연구 자원의 표준 관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권고하고 있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들은 생명정보·생물유전자원·생물다양성 분야를 담당하는 국가 차원의 거점센터를 각각 설립해 범국가적인 관리체제를 구축, 운영하고 있다. 한국도 지난해 ‘생명연구 자원의 확보·관리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데 이어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와 기탁등록보존기관을 지정해 그 동안 개별기관에서 산발적으로 관리되던 생명연구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제는 부처별 생명연구 자원의 관리 규정을 통합적으로 조율해 국가 차원의 가이드라인 제정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모든 연구에서 발생한 연구소재를 모든 연구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기탁자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규정을 마련하고, 신뢰성 있는 연구소재를 공급하기 위해 연구 소재 은행의 선진화도 시급하다.

그런데 국내 생명연구 자원은행의 대부분이 속한 연구 소재 은행(KNRRC)의 운영 예산은 17년 전 사업을 시작할 때의 규모를 벗어나지 못했다. 1995년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한 은행당 5000만원을 지원했는데, 17년이 지난 지금도 한 은행당 1억원밖에 되지 않는다. 필요한 연구소재가 많다 보니, 연구 소재 은행 수는 5개에서 36개로 늘었다. 거점센터 5곳과 중앙센터 1곳이 있는데 올해 50억원밖에 지원받지 못했다.

일본의 경우 대형 소재은행에는 연간 100억원을, 대학의 연구소재은행에는 20억~30억원을 지원한다. 다른 나라의 20분의1, 30분의1, 심지어 100분의1도 안 되는 예산으로 외국과의 생명자원 전쟁에서 싸우기는 무리다. 다른 나라는 항공모함을 타고 나가 그물로 생명연구를 하는데, 우리는 쪽배를 타고 막막한 대양에 나가 낚시를 하는 형국이다.

세계 생명자원 시장 규모는 올해 2조 5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OECD는 생물산업을 인류가 직면한 보건·식량·에너지·환경 등 주요 난제를 해결해 줄 유효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연구재료를 마련해서 다른 분야 과학자들이 쉽게 생명자원으로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요리사의 재주가 뛰어나도 재료가 싱싱하지 않으면 좋은 요리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2010-04-23 31면
많이 본 뉴스
종부세 완화,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1가구 1주택·실거주자에 대한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종부세 완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완화해야 한다
완화할 필요가 없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