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쥐어짜지도 바라지도 말라/홍희경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쥐어짜지도 바라지도 말라/홍희경 사회부 기자

입력 2009-11-19 12:00
수정 2009-11-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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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세종시에 맥주 공장을 짓는다? 이런 얘기에 롯데 측은 “결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도 허투루 듣기는 찜찜하다. 정부와 기업이 갖고 있는 허점을 파고든 절묘한 대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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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경 경제부 기자
홍희경 경제부 기자
맥주 제조업에 뛰어들고 싶어하는 롯데는 아직 제조면허를 취득하지 못했고, 세종시를 자족도시로 변화시킬 구상을 하는 정부는 재계 상위 그룹으로부터 진출하겠다는 확답을 듣지 못했다. 언뜻 보면 맥주 제조면허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와 재계 5위 그룹 롯데의 제휴가 필연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그런데 몇 가지가 걸린다. 우선 롯데 측에 맥주공장 부지를 제안했던 경북 김천시가 있다. 세로로 긴 이 도시를 정차하지도 않고 가로지르는 KTX 선로 탓에 도시 개발에 애를 먹던 김천시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롯데에 맥주공장 부지를 제안했었다. 강원도에도 롯데를 유치하려던 제2, 제3의 지방도시가 있다고 알려졌다. 물밑에서 공장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던 지자체에 갑작스러운 세종시의 맥주공장 유치설은 경량급 경기에 헤비급 선수가 뛰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세종시가 마치 몇 달 전에 발견된 신대륙인 양 입지에 대한 고려 없이 대기업 유치에 뛰어든 정부의 모습도 당혹스럽다. 정치권 내홍을 미봉한 채 세종시 기업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카드를 내놓은 정부는 인구를 모이게 할 기업의 설비를 원하는 게 아니라 오직 기업의 이름을 원하는 듯하다. “물류기업이나 녹색기업을 중심으로 진출 의사를 타진해 보라.”는 지시 대신 “재계 순위대로 점검해 보라.”는 취재 지시가 나오는 이유다.

기업 규제는 완화해야 하지만, 그것은 정당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몇 년, 길게는 몇 십년 동안 숙원이었던 특정 기업의 골칫거리가 세종시를 지렛대 삼아 일거에 해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업의 경제적 고려에 기반하지 않은 문제해결은 시간이 지난 뒤 “기업을 분리할 수 있었다면 왜 정부는 분리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

홍희경 사회부 기자 saloo@seoul.co.kr
2009-11-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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