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독설의 역설/김종면 논설위원

[씨줄날줄] 독설의 역설/김종면 논설위원

입력 2009-06-13 00:00
수정 2009-06-13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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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놈의 녹색. 지랄하고 앉아 있네. 아니 원자력 쓴다면서 무슨 놈의 녹색이야? 그리고 (4대강 정비사업을 하면서) 방글라데시에서 애들 데려다 쓸 게 분명한데 그게 무슨 놈의 뉴딜이야. 외국 노동자 구제책이야? 대한민국의 대학 나온 백수들 중에 거기서 모래통 질 사람이 어디 있어?” 최근 김지하 시인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녹색’을 허구라고 비판하며 했다는 말이다. 그는 그 찬란한 독설 잔치 속에서도 “난 분노 없이 욕해. 이치가 있어야 욕해.”라는 단서를 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고 한다. 샤먼의 어법을 빼닮은 육두문자의 반말짓거리, 그것은 친근함인가 오만함인가. 일도양단의 단순명쾌한 논리, 그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가 땅에서 솟은 것인가. 사정없이 내려꽂히는 서슬퍼런 독설의 칼날에 가슴을 베일 것 같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엊그제 6·15남북공동선언 9주년 연설에서 “피 맺힌 심정”의 격한 말들을 쏟아냈다. “독재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아부하는 것은 용서 안 된다.” “정치를 오래한 제 경험으로 볼 때 만약 이명박 정부가 현재와 같은 길로 나간다면 이명박 정부도 국민도 모두 불행해진다.” 그의 말을 독설의 범주에 놓고 생각해 볼 수 있을까. 독설의 사전적 의미는 혀를 악독하게 놀려 남을 해치는 것이다. 독설이라고 해서 물론 다 침뱉어 버릴 것만은 아니다. 양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듯 비록 가슴은 쓰리지만 곱씹어 보면 부조리한 세상의 해독제 구실을 하는 ‘달콤한’ 독설도 있다. 그것은 잠언시와도 같은 좋은 독설이요, 미학이 있는 독설이다. 김 전 대통령의 말은 어느 쪽인가. 국가최고지도자를 지낸 원로의 말인 만큼 저주의 독설이 아니라 역설의 진리를 표현한 심모원려의 ‘하얀’ 독설이길 바란다.

김지하는 “독재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돼, 과하다는 뜻이 아니라 무책임해.”라며 “독재라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이 없기 때문에 잘못하고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딱 짚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현 정부를 거듭 독재정권으로 못 박은 김 전 대통령과는 사뭇 다른 인식이다. 역사의 판관(判官)은 김 전 대통령의 독설을 어떻게 기록할까.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2009-06-1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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