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규 사회부장
‘촛불 개입 이메일’ 결과는 참담했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회부’ ‘위증혐의 고발’ ‘검찰 수사’. 신 대법관은 상상하지 못했을 터이다. 그렇지만 이런 꼬리표는 주홍글씨처럼 그를 따라다니게 됐다. 현재 그는 거취를 두고 장고 중이다. 하지만 법관으로 수명은 다했다고 본다. 법관의 생명은 신뢰이며, 이를 상실한 법복은 무거운 짐일 뿐이다.
주위의 시샘을 받을 정도로 잘나가는 판사였고, 내성적인 성격의 그가 왜 이같은 강수를 뒀을까. 신 대법관은 “사법행정 차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줄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대법관 자리’ 때문이라는 법조계의 해석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는다. ‘친전’ ‘대내외비’라는 보안등을 켜면서까지 위험천만한 이메일을 보낸 것은 기실 대법관 자리가 눈앞에서 어른거렸기 때문이 아닐까. ‘헌법과 법률에 따라 양심껏 판결한다.’는 다짐도 ‘승진 제도’라는 벽 앞에서는 맥을 못추는 게 현실이다. 제도 개선 없이는 제2, 제3의 신영철 대법관은 언제든지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결국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의 문제다. 제도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인사제도를 손볼 때가 됐다. 사법부 관료화의 근원으로 지목된 ‘제왕적 대법원장’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모든 것이 대법원장으로 통한다.’고 할 정도로 사법부 내 대법원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전체 2400여명 판사의 승진·보직이 대법원장 손에 달려 있다. 판사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대법관 전원의 임명제청권도 대법원장이 갖고 있다. 판사 세계가 대법원장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판사들에게 승진은 법원에 남느냐 옷을 벗느냐, 곧 생사의 문제다. 고등부장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평생법관을 거론하는 이도 있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다. 관료화가 결과적으로 신 대법관의 이메일 파동을 낳았다. 서강대 임지봉 교수는 “대법관 자리가 판사들의 최종 코스이기 때문에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법원 밖의 다양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대법관을 뽑아야 한다는 법조계의 주장은 눈여겨볼 만하다.
인사제도의 수술은 간단하면서도 쉽지 않은 이중적 속성을 갖고 있다. 인사권자가 칼자루를 포기할 때만이 가능하다. 선망의 대상인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제청(提請)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형식적으로 대법원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에 의해 거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지만 사전조율은 있을 수 있다. 이 끈을 끊지 않으면 개혁은 요원하다.
근무평정 제도도 손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사법시험이나 연수원 성적이 아닌, 승진의 또 다른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출발은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판사들에겐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성실성, 조직 적응력, 건강, 균형감각 등 기준이 지극히 자의적이다. 비밀주의도 문제다. 판사들은 자신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를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평가 결과에 대한 반박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견제장치도 없다. 판사들을 순치(馴致)시키는 도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다. 근무평정 제도가 폐지되면 몰라도 존속된다면 개선책을 미룰 수 없는 이유다. 법조계에서 거론되는 법관회의의 내실화도 검토해 볼 만하다. 소장 판사들과 고참 판사들의 소통의 창구로 활용될 수 있다. 흉금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다면 사법부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
최용규 사회부 차장 ykchoi@seoul.co.kr
2009-03-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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