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거름 주는 사람의 마음/구효서 소설가

[문화마당] 거름 주는 사람의 마음/구효서 소설가

입력 2009-03-05 00:00
수정 2009-03-05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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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종의 제품일 경우, 같은 가격이라면 좋은 상품이 더 잘 팔린다. 말할 것도 없이, 나쁜 상품은 잘 안 팔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게 있다. 예술작품이 그러하다. 문학작품도 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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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 소설가
구효서 소설가
같은 가격일지라도 좋은 작품이 잘 팔리지 않는 경우는 허다하다. 아다시피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다 좋은 작품은 아니다.

왜 그럴까? 까닭을 물으면 금방 나오는 대답은 이렇다. 재미있으면 읽고, 재미없으면 안 읽으니까.

재미있으면 좋은 작품이고 재미없으면 나쁜 작품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없듯이, 재미있는 작품이 나쁜 작품이고 재미없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는 등식도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 과연 재미가 무엇이냐는 물음으로 이어질 뿐이고, 종당엔 좋은 게 뭐고 나쁜 게 뭐냐는 질문으로 나아가고 만다.

형이상학을 하자는 게 아니다. 이 글의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필자의 문장들 속에서 문제점을 간파했을 것이다. ‘상품’과 ‘작품’을 동일시했다는 것.

그 둘이 같은 차원의 것이 아니라면 이른바 좋은 작품이 안 팔린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술이나 담배처럼, 상품이란 때로 몸에 좋은 게 아니면서도 잘 팔릴 수 있다. 써서 먹기 싫지만 안 살 수 없고 안 먹을 수 없는 치료약이라는 것도 상품이다. 그것들을 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동일한 가격일 때 좀 더 맛있거나 효능이 높은 제품이 잘 팔리기 때문일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문화예술작품도 생산 유통 소비 구조 속에서 자신의 한 운명을 겪는다. 그러니 상품이라 안 할 수도 없다. 문화‘상품’ 혹은 문화‘산업’이라 하지 않던가. 노골적으로 상품이라 명명하고 그렇게 간주하더라도 문화예술작품에는 끝내 상품이라 단정할 수만은 없는 요소가 여전히 남는다.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소득과 관계없이 작품 활동에 자신의 명운을 거는 이유는, 아닌 게 아니라 형이상학이나 신학적 측면의 문제일 듯싶기도 하다. 돈이 되면 하고 돈이 되지 않으면 안 하는 게 문화예술이 아니고, 아니었으니까.

가격과 이른바 품질 경쟁에서 살아남은 상품만을 인정하려는 경제적 관점을 문화예술작품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시도나 태도는 적절하지 않을 뿐 아니라 타당하지도 않다는 말이다. 상품과 작품은 그 가치적 측면에서 결코 동일시할 수 없는 상충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우리 사회에서 작품이라는 것은 상품과 유사한 일생을 보낼 수밖에 없다.

팔리지 않으면 도태될뿐더러 생산 활동 자체를 위축시킨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작품성보다는 상품성을 택할 수밖에 없고, 끝내 외면한다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든 작품에는 사형선고일 뿐이다.

문화예술작품의 운명을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여기서 생겨난다. 상품과 구별되는 특별한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성급하게 어떤 제도를 마련하거나 보완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예술작품에는 제도와 맞부딪치는 속성이 있다. 정부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도 아니다. 크고 멀쑥한 것만이 훌륭한 농산물이 아니듯이, 쟁기와 비료와 농약의 개선만 갖고는 좋은 작물을 지속적으로 수확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땅을 풍요롭게 하는 거름이요, 거름을 주는 사람의 수고로운 마음이다.

잘먹고 잘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은 차라리 소박하다. 문학 하는 사람들이 외려 짓궂다. 잘먹고 잘산다는 게 뭔데? 라고 따지니까.

몰라서 물어? 라며, 마치 자명한 해답이라도 있는 듯 되묻는 질문이야말로 고약하고 무섭다.

구효서 소설가
2009-03-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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