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출장을 다녀왔다. 해마다 이맘 때 열리는 전미가전쇼(CES)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2 002년에도 가봤으니 정확하게 7년 만에 같은 전시장을 찾은 셈이다. CES에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가전업체들이 모두 참여한다. 각 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그해의 가전업계 트렌드와 시장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런 만큼 취재열기도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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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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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정치부 차장
2002 CES에서는 삼성전자 진대제 전 사장이 기조연설을 했다. 동양인이 기조연설을 한 건 처음이었다. 이데이 노부유키 당시 소니 회장을 제치고 삼성전자의 사장이 연설을 하게 된 것도 화제가 됐던 것으로 기억난다. 진 전 사장은 ‘닥터 디지털’이라고 불리며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반면 삼성전자는 기대한 것만큼 주목받지는 못했다. 당시는 소니 등 일본 가전업체가 시장을 주도하던 시절이었다.
올해 CES에서는 소니의 하워드 스트링거 회장이 기조연설을 했다. 세계 최소형 노트북 PC를 소개하며 관심을 끌었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소니의 캠코더와 카메라 등 일부 신제품도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올해는 소니보다는 삼성전자가 더 주인공에 가까웠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두께의 디지털TV를 선보였다. 기술력에서 한 발 앞서 있음을 입증했다.
삼성전자와 소니 양 사는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된다. 수치를 보면 삼성전자가 소니를 앞서고 있다. 2008년 기준 브랜드 가치를 보면 삼성전자는 177억달러, 소니는 136억달러다. 특허출원도 삼성전자(3515건)가 소니(1485건)보다 많다. 컬러TV,액정표시장치(LCD) TV는 삼성이 1위, 소니가 2위다. 휴대전화는 수량기준으로 삼성전자가 2위, 소니는 3위다. 최근에는 나란히 지난해 실적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4분기 1조원에 달하는 영업적자를 냈다. 분기별 적자를 낸 것은 2000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우리나라의 수출 15%를 책임지는 간판기업이 예상보다 더 나쁜 성적을 내자 주식시장까지 출렁거렸다.
소니는 더 심각하다. 2008 회계연도 영업손실이 2600억엔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4조원에 육박한다. TV와 카메라 등 주력제품이 부진한 데다, 엔고 등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불황 속에 경쟁은 더 심해지면서 판매단가가 계속 떨어진 것도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소니는 불황타개를 위해 과감한 긴축경영에 돌입했다. 미국과 프랑스 공장의 폐쇄를 결정한 데 이어 2000명의 감원을 최근 발표했다. 구조조정을 위기돌파의 해법으로 삼은 셈이다.
삼성전자도 소니보다는 낫지만 글로벌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지난해 매출(본사기준)은 72조 9500억원이지만, 영업이익은 4조 1300억원에 그쳤다. 해마다 매출은 늘고 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줄었다. 2000년 매출(34조 2800억원)은 지난해의 절반도 안 됐지만, 영업이익(7조 44 00억원)은 2008년보다 3조원 이상 많았다. 종업원 수(국내 기준)도 2000년 4만 4000명 수준에서 지난해는 두 배 가까운 8만 7000명으로 늘었다. 생산성이 그만큼 떨어지고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위기감 속에 삼성전자도 조직을 대폭 줄이고 현장을 강화하는 쪽으로 메스를 댔다. 젊은 인재를 전진배치해 ‘발로 뛰는 경영’으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임원진 물갈이는 있었지만 소니와 달리 일반직원들에 대한 감원은 피해 갔다.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이 조직과 분위기 쇄신만으로도 위기를 기회로 돌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탕이 됐다. ‘불황타개’라는 같은 목적을 놓고 서로 다른 해법을 찾은 두 기업이 어떤 결과를 낼지 주목된다.
김성수 산업부 차장 sskim@seoul.co.kr
2009-01-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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