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서울신문에서 취재원 ‘관계자’씨를 만났다.어느 때부터인가 지면에서 부서 관계자,최측근,아무개 씨 등 가명의 취재원을 만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됐다.직접 6일(토) 발행된 서울신문의 익명 취재원 수를 세어 봤다.문화,영화,스포츠 면 등을 제외한 1∼12면에 게재된 기사는 총 56개.그 중 이름을 밝히지 않은 취재원은 29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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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영 이화여대 중어중문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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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영 이화여대 중어중문과 4년
기사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는 줄 수 있으나,자신의 이름은 나가지 않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을 게다.하지만 이런 저런 이해를 해보려 해도 돌아오는 것은 ‘책임회피’라는 생각이다.
실제 필자 역시 대학 신문사에서 기사를 쓴 경험이 있다.무수한 취재원이 익명을 요구했고,이는 일반 학생,교수,직원뿐만이 아니다.특정 업무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각 부서 처장까지,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실명보도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그들의 말을 인용하자면,자신이 한 말이 직접 기사화되고 활자로 찍혀 나오는 것,행여 파문이 확산되었을 경우 그 책임이 모두 자신에게 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이 크다고 했다.이는 상대적으로 범위가 협소한 학교 사회의 이야기다.그렇다면,그 영향력이 더 넓게 확산될 가능성이 높은 일간지 속 취재원이 느낄 부담감의 크기 역시 짐작 가능하다.이렇듯 사회의 암묵적 합의 하에 지면에서 활발하게 살아 숨쉬어야 할 사회 구성원들이 익명이라는 방패 뒤로 사라지고 있다.
예전에 한 일간지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익명사용을 무조건 막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칼럼을 본 적이 있다.물론 취재원이 자신의 신분에 위협을 느끼거나,보도 후 사회에서 자신의 입지가 곤란해지는 상황이라면 익명 처리는 이해해야 한다.필자 역시 시민들이 알아야 할 ‘핵심정보’라면 익명 취재원을 통해서라도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우려되는 것은 지금과 같이 기사 하나당 0.517명의 익명 취재원이 등장할 경우,정보의 가치가 낮아지게 되고,장기적으로 서울신문에 대한 신뢰성 저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실제로 기사에 쓰인 익명 취재원의 수를 세며 기사의 맥락을 살펴본 결과,익명처리가 불가피한 경우보다 책임 회피 혹은 기자와 취재원의 적절한 타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기원 전 99년,사마천은 궁형의 치욕을 딛고 ‘사기’ 집필을 완성해 냈다.당시 지식인들은 생식기가 잘리는 궁형에 처해지면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대부분 자살을 선택했다.하지만 소신 있게 제 뜻을 주장했던 사마천은 꿋꿋이 살아 남아 중국의 문학,역사,철학을 아우르는 방대한 저서를 써내려갔다.후세에 자신의 기록을 길이 남기겠다는 마음 하나로 견뎌낸 치욕의 세월이었다.당시 사마천이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는 “마치 쓰레기더미에 갇힌 것 같은 지금의 처지를 참고 견디는 것은,저의 문장이 후세에 전하여지지 않을까 애석하게 여기기 때문이다.”라는 글귀가 남아 있다.이처럼 쓰디쓴 인내의 과정을 참아낼 정도로 사마천의 ‘기록’에 대한 책임감은 남달랐다.
소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에는 “거세 당한 아픔과 수치를 딛고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생각해 보라.”라는 구절이 나온다.그렇다.자기 이름을 걸고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이러한 정신은 자신의 바이라인이 달린 기사가 차곡차곡 역사의 기록으로 남는 기자나,자신의 언급 하나하나가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취재원 모두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이름을 걸고 말 혹은 글을 통해 기록을 남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당사자에게 부담감을 주게 마련이다.그러나 그 부담을 넘어선 책임감이 바로 자신의 말과 글의 힘이다.앞으로 서울신문에서 취재원 ‘관계자’씨를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길 바란다.
변선영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4학년
2008-12-0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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