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우리 시대의 희망을 위하여/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문화마당] 우리 시대의 희망을 위하여/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입력 2008-11-13 00:00
수정 2008-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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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어느 추운 겨울날, 영국 런던 다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노인이 바이올린을 켜며 행인들에게 구걸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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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한 외국사람이 지나가다 이 광경을 바라보더니, 그 노인이 너무 초라하고 불쌍해 보여선지 가만히 다가가서 바이올린을 좀 만져보자고 했다. 노인은 그러잖아도 손이 시렸던 차라 잘 됐다 싶어서 낡은 바이올린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연주자가 바뀐 바이올린이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새 연주자는 구슬픈 가락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름다운 곡조의 노래를 계속해서 바이올린의 현에 실었다. 그 자리가 영국하고도 런던의 한복판이긴 했지만, 귀가 열린 사람들이 뜻밖에도 많았다.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췄고 자연스럽게 둥그런 관람석을 이루게 되었다. 노인의 모자에 한 푼 두 푼 던져지던 동전이 수북이 넘치게 되었고, 이윽고 사람들이 운집하여 발디딜 틈도 없게 되었는데, 이제는 1파운드짜리 금화를 던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자 군중 속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와 외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파가니니다! 파가니니!”그 외국인은 이탈리아에서 온 당대 바이올린의 거장 니콜로 파가니니(1784-1840)였던 것이다. 스스로 세계의 정상에 선 음악의 기량을 아끼지 아니하고 추운 길거리의 불쌍한 거지노인을 돕기 위해 거리의 악사를 자원했던 파가니니에게서, 우리는 그의 음악적 천재보다 더 고귀하고 감동적인 인품의 향기를 보게 된다. 조그마한 명예나 지식이나 재물을 가지고서도 현대판 귀족으로 행세하려는 사람들이 넘치는 이 완악한 세상에, 작고 아름답고 소중한 것에 대한 인식을 가진 우리가 먼저 우리 주변의 춥고 굶주리고 억눌린 자들을 위하여, 그 낙망의 자리에서 희망을 찾아낼 수 있도록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이다. 국제 경제 침체의 여파가 온 세계를 강타하고 우리의 살림살이와 시장바구니에까지 찬바람을 일으키는 오늘, 참으로 중요한 것은 이 어려움과 고통을 이기고 넘어서려는 공동체적 연대일 것이며, 동시에 그 당사자 자신도 새로운 의지와 기력을 섭생하는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 정녕 괄목상대로 바라보아야 할 한 인물이 있다. 따로 소개할 필요가 없을 만큼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름 헬렌 켈러(1880-1968). 그를 여러모로 설명할 것 없이, 그가 ‘애틀랜틱 언스리’1933년 1월호에 발표한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의 문면 한 부분을 차용해 보자.

“나는 가끔 친구들에게 그들이 본 것이 무엇인지 묻곤 합니다. 얼마 전, 오랫동안 숲을 산책하고 온 친구에게 무엇을 발견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아무 것도 특별한 것은 없어.’라고 대답을 하더군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중략)그때 내 마음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만지기만 해도 이런 큰 기쁨이 있는데 눈으로 보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만일 사흘만이라도 보고 말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볼 것인가?”

헬렌이 온 몸의 장애를 꿋꿋이 이겨내면서 쓴 이 글을 통해, 당시 세계적인 경제공황으로 신음하던 많은 사람들이 큰 위로를 받았고, 이는 리더스다이제스트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되었다. 그가 사흘간만 하고자 희망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여명과 노을을 보고 때로 영화를 보는 것 등, 우리가 일상에서 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헬렌의 말처럼, 희망이야말로 인간을 성공으로 인도하는 신앙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 앞에 생명을 던지는 지금, 어려운 이를 돕는 따뜻한 마음과 그리고 자기 내부에서 발양하는 희망의 마음이 직조물의 씨줄과 날줄처럼 교직될 수 있다면, 어떤 힘든 문제라도 넘어설 수 있는 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2008-11-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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