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MB폰/ 우득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MB폰/ 우득정 논설위원

우득정 기자
입력 2008-03-07 00:00
수정 2008-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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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괴자금’ 소송 당사자로 논란이 되고 있는 박철언 전 정무장관은 노태우 정부 당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세간의 주목 대상이었다. 그래서 각 언론사의 정치부 담당기자들은 그의 한마디를 귀동냥하기 위해 매일 새벽과 밤이면 서울 양재동 빌라의 경비실에서 진을 쳤다. 가끔 중앙일간지의 청와대 출입기자나 정치부장도 기자들의 속된 표현으로 ‘뻗치기’하며 좁은 경비실 한쪽에서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박 전 장관에게도 예외는 있었다. 극히 친한 몇몇 기자에게는 카폰의 통화가 허용됐다. 당연히 그들은 질시와 선망의 대상이었다.

에피소드 하나. 연말을 맞아 박 전 장관은 각 언론사 담당기자들과 망년회를 가졌다. 그날 저녁 신문에 남북 고위 관계자가 해외에서 접촉했다는 기사가 실렸다.‘북방 밀사’로 불렸던 박 전 장관 담당기자들에게 확인 지시가 떨어졌다. 박 전 장관은 그 자리에서 안기부장을 호출했다. 회의 중 통화가 연결된 안기부장에게 “내가 모르는 남북 비밀접촉이 있었느냐.”고 캐물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안기부장을 술집에서 전화로 호출하는 것을 보고 동석했던 기자들은 새삼 그의 위세를 실감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진념 노동부장관은 집무실에서 출입기자들과 한담을 나누다가 비서관의 귀띔을 받고 황급히 부속실로 달려갔다. 잠시 후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어른의 전화’라며 수첩을 꺼내 통화시각과 내용을 기록했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수첩을 보여주며 최근 몇개월 사이에 ‘어른’과 몇번 통화했다고 자랑했다. 먼저 전화한 경우는 없었다. 권력은 이처럼 핵심권력과의 거리, 다시 말하면 소통의 정도에 따라 크기가 결정된다. 박 전 장관이 ‘6공 황태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자신이 핵심권력이기도 했지만 대통령을 포함, 권력기관장들과 ‘핫 라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공약대로 일부 기업인들에게 개인 휴대전화번호를 공개한단다.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자기들끼리는 로맨스일지 모르나 남의 눈에는 청탁’이라는 일각의 비판도 염두에 뒀으면 한다. 이것도 특권으로 보는 게 세상인심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2008-03-0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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