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세계화 시대의 외교 담론/위성락 중앙대 겸임교수·외교부 대사

[글로벌 시대] 세계화 시대의 외교 담론/위성락 중앙대 겸임교수·외교부 대사

입력 2008-02-11 00:00
수정 2008-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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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중앙대 겸임교수·외교부 대사
위성락 중앙대 겸임교수·외교부 대사
나라마다 대외적인 이슈를 인식하고 담론하는 나름의 프로세스가 있다. 문제를 파악하고 대응 방향을 끌어내는 사회 전반의 논의 과정을 말하는데, 민주국가의 경우 정치권·관료·언론·학계·시민단체 등이 주 참여자가 된다.

이 프로세스의 우열은 그 나라의 외교정책에 반영되며 국가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세계화 시대에는 그 정도가 더하고, 우리와 같은 비서구권 국가에 더 절실한 문제다.

비서구권에게 대외문제는 19세기 서구에 의해 부과된 생소한 경험인 데다 그나마 외국어로 던져지는 난해한 이슈이므로 사회 전체의 대응에 따라 나라의 흥망성쇠가 갈린다. 일본이 대체로 이 문제를 잘 다뤄 번영의 길을 열었다. 반면 우리는 구한말 이래 겪은 국권 상실과 분단, 전쟁, 냉전 등 일련의 고난이 모두 대외문제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흠이 많은 대응체계를 갖고 있다. 역사는 한국인에게 유전인자에까지 외교적 소양을 각인하라는 교훈을 주었으나 우리는 그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물론 어느 나라나 대외 이슈를 처음 인식할 때 고유의 시각에 따른 다소의 굴절은 있다. 내부 담론 과정에서 국내의 정치적 고려가 가미되는 일도 항상 있다. 정상 오차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라는 말이다. 문제는 굴절과 고려가 지나쳐 논의가 궤도를 이탈한다는 데 있다. 이탈의 배경에는 몇 가지 동인이 관찰된다. 이념 과잉이 눈을 가릴 때도 있고, 국내 정치적 필요가 상황을 압도하기도 한다. 개인의 공명심이 사실을 비틀 때도 있다. 언어와 문화에 대한 부족한 이해가 초래하는 오독도 있다.

한편 특유의 감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세계 읽기는 변수라기보다 차라리 상수다. 앞서 말한 동인들이 한꺼번에 작동하고 참여자들이 다투어 오차 위에 오차를 보태는 쏠림 현상도 특징이다. 이렇다 보니 하나의 국제이슈를 두고 한국만이 특이한 논의를 하는 별천지로 남게 되는 일도 생긴다. 일례로 북핵 문제에 관한 페리 보고서를 들어보자. 페리 구상은 한국에서만 우리의 햇볕정책과 동일한 접근으로 해석되었다. 페리는 1998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야당의 비판을 더 이상 못 견디게 된 클린턴이 고육지책으로 기용한 특검과 같은 존재였다. 자연히 그는 당시 한국과 미국의 기존 접근방법을 멀리하고 공화당의 강경주장 중 일부를 차용했다. 결국 그는 더 많은 주고받기식 협상안과 이 안이 통하지 않을 시 추진할 강압적 대응을 배합한 구상을 제시한다. 좌우정렬을 해보자면 좌로부터 햇볕정책-클린턴 접근-페리 접근-공화당 매파 주장의 순인데도 당시 한국여론은 페리 접근을 환영했다. 햇볕정책을 비판해온 공화당과 함께.

흥미로운 일은 북한은 이러한 사정을 판별하였다는 것이다. 북한은 페리 제안을 거부했다. 종래보다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점을 알아차린 것이다. 북한의 프로세스도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선 사안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우리식 인식과 담론이 갖는 문제점에 대한 사회 전반의 경각심이 높아질 때 참여자의 행동은 절제되고 오차는 줄어들 것이다. 다음으로는 오차 발생시 이를 교정하는 기능을 키워야 한다. 이 부분은 전문가 집단에 기대할 수 있다. 이들이 파수꾼과 교정자가 되어 궤도 복원 기능을 맡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의 양식과 프로페셔널리즘을 진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 프로세스에 참여하는 각계의 인적 역량을 높이는 노력을 들고 싶다. 언어와 대외문제에 식견이 높은 인력이 개발·충원될 때 오독의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한 나라의 대외문제 대응능력은 그 나라의 지적 역량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21세기의 한국은 더 나은 담론 구조를 가질 때가 됐다. 세계화 시대에 부응할 대외정책을 위해 각계의 관심이 주어지기를 소망한다.

위성락 중앙대 겸임교수·외교부 대사
2008-02-1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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