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허위 학력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의 문제인가 싶었는데 양파 껍질처럼 계속 나오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우리 사회에 학력을 속인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싶어서.

언젠가 언론계에도 허위 학력자 색출 바람이 일었었다.10년도 더 된 일이다. 당시 기자의 어학 능력을 문제삼으며 색출 0순위라고 주위에서 놀려댔던 기억이 난다. 얼마 뒤, 회사는 정말 위장 학력자 몇몇을 솎아냈다. 서로 0순위라며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을 때, 술자리 너머의 그 누군가는 가슴이 조마조마했겠구나 싶어 미안하고 안쓰러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요즘의 가짜 학력 파동을 보고 있으면 뒷맛이 씁쓸하다. 가짜 학력자 가운데는 유명 어학 스타들도 있다. 어학 실력은 다른 업종과 달리 즉석 검증이 가능하다. 서울 학원가에서 명성을 날리려면 더더욱 그렇다. 그 격전지에서 스타가 됐다면 학력은 가짜였을지언정 실력은 가짜이기 어렵다. 실력에 속은 건지,‘간판’에 속은 건지 곰곰이 되씹어볼 일이다.

오랜 세월 감쪽같이 거짓말을 해온 가짜 학력자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가짜 학력자들을 양산한 데는 우리 모두가 ‘공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력’만큼은 진짜인 이가 처음부터 학력을 솔직히 고백했더라면?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그 자리에 오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예외도 적지 않지만, 아직은 제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적당한 간판이 받쳐주지 않으면 스타로 발돋움하기 쉽지 않은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학벌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학벌을 따지는 이중성, 실력보다 간판에 더 흔들리는 우리 사회의 검증 잣대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제2, 제3의 신정아’는 계속 나올 것이다. 그래서 지탄받을 이는 그들뿐만이 아니다. 우리도 그 비판과 반성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간판에 속아 실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죄’가 있으니까. 당당한 실력에도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게끔 내몬 죄가 있으니까.



안미현 산업부 차장 hyu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