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도 그럭저럭 (한국말 공부를) 도왔다. 무엇을 감추랴, 내가 공지영씨를 만난다고 하자 누구보다도 관심을 표시하고 기뻐해준 것은 딸이었다. 딸은 공지영 작품의 애독자이다.”
지난 5월 말 일본 신초샤에서 출간된 공지영씨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번역한 사람은 일본인 납치피해자 하스이케 가오루다. 지난 15일 개설한 블로그 ‘My Back Page’에는 번역본 출판을 앞두고 일본을 찾는 공씨와의 첫 만남에 가슴 설레어하면서도 그와의 대담, 통역을 맡은 부담감을 솔직하게 적고 있다.“24년간 북한에서 살다가 귀국 후에는 죽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지만 말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한국어를 말할 때만 쓰는 입 주변 근육이 경직돼 있기 때문일까? 스스로도 부끄러울 만큼 발음이 부자연스럽다. 대작가인 공지영씨의 통역을 하는 건 너무 무모한 일 같다.”
불안·초조에 휩싸인 그는 공씨의 일본 방문을 앞두고 차를 몰 때건 조깅할 때건 목욕할 때건 한국어 CD를 듣거나 혼잣말을 하면서 만남을 준비했다. 그도 모자라 부인과 딸을 상대로 회화 연습을 했다고 한다.
1957년생인 하스이케는 대학 3학년 때 고향인 니가타현에서 납치됐다. 평양에 끌려온 어느날 김일성종합대학의 유학생용 교과서를 주더니 우리말을 배우라고 하더란다.‘잃어버린 24년´을 보내고 2002년 귀국한 그가 한국 문학 번역에 손을 댄 것은 3년 후의 일이다. 김훈의 장편 ‘칼의 노래’를 비롯해 10개 작품을 일본에 소개했다. 영문도 모른 채 이국 땅에서 익힌 우리말이 번역가로서 제2의 인생을 걷게 했다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그제 중국 베이징 북한대사관에서 도추지(58)라는 여성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건너간 도씨는 2003년 일본으로 납치됐다가 얼마전 탈출했다고 주장했다. 누구에게 끌려갔고, 일본에서는 어떻게 생활했는지 한마디 설명도 없이 자리를 떴다. 핫뉴스를 기대한 각국 기자 80여명이 황당해했다고 한다.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맞불 작전’으로 보이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다. 꼬일 대로 꼬인 북·일관계를 이런 식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평양에 묻고 싶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지난 5월 말 일본 신초샤에서 출간된 공지영씨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번역한 사람은 일본인 납치피해자 하스이케 가오루다. 지난 15일 개설한 블로그 ‘My Back Page’에는 번역본 출판을 앞두고 일본을 찾는 공씨와의 첫 만남에 가슴 설레어하면서도 그와의 대담, 통역을 맡은 부담감을 솔직하게 적고 있다.“24년간 북한에서 살다가 귀국 후에는 죽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지만 말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한국어를 말할 때만 쓰는 입 주변 근육이 경직돼 있기 때문일까? 스스로도 부끄러울 만큼 발음이 부자연스럽다. 대작가인 공지영씨의 통역을 하는 건 너무 무모한 일 같다.”
불안·초조에 휩싸인 그는 공씨의 일본 방문을 앞두고 차를 몰 때건 조깅할 때건 목욕할 때건 한국어 CD를 듣거나 혼잣말을 하면서 만남을 준비했다. 그도 모자라 부인과 딸을 상대로 회화 연습을 했다고 한다.
1957년생인 하스이케는 대학 3학년 때 고향인 니가타현에서 납치됐다. 평양에 끌려온 어느날 김일성종합대학의 유학생용 교과서를 주더니 우리말을 배우라고 하더란다.‘잃어버린 24년´을 보내고 2002년 귀국한 그가 한국 문학 번역에 손을 댄 것은 3년 후의 일이다. 김훈의 장편 ‘칼의 노래’를 비롯해 10개 작품을 일본에 소개했다. 영문도 모른 채 이국 땅에서 익힌 우리말이 번역가로서 제2의 인생을 걷게 했다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그제 중국 베이징 북한대사관에서 도추지(58)라는 여성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건너간 도씨는 2003년 일본으로 납치됐다가 얼마전 탈출했다고 주장했다. 누구에게 끌려갔고, 일본에서는 어떻게 생활했는지 한마디 설명도 없이 자리를 떴다. 핫뉴스를 기대한 각국 기자 80여명이 황당해했다고 한다.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맞불 작전’으로 보이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다. 꼬일 대로 꼬인 북·일관계를 이런 식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평양에 묻고 싶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2007-06-2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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