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캔터를 갖다 주세요.” 남녀가 섞인 식사자리에서 한 친구가 뜻밖의 주문을 했다. 평소엔 과묵해서 존재감이 약했던 그였다. 플라스크 비슷하게 생긴 디캔터가 오자 제법 그럴듯한 솜씨로 디캔팅을 시작했다.“타닌이 많은 와인은 병에서 디캔터로 옮겨야 제맛이 나요. 와인을 숨쉬게 해야 하거든.” 와인의 종류와 특성을 줄줄이 꿰기도 했다. 참석자, 특히 여성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모임이 끝난 뒤 슬며시 물어봤다.“나이가 들어가는데 그냥 처져 있는 게 싫어서 와인 공부 좀 했지. 시간과 돈을 꽤 투자한 거야.” 집에서는 자식들과 대화하기 위해 코미디 프로를 일부러 챙겨 본다고 했다.
언론계 대선배 몇분을 만났다. 일흔을 넘긴 원로들이었다.“요즘은 TV광고를 봐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어.” 감각적이고 표피적인 세태를 꼬집으려나 생각했다. 하지만 말씀을 들어보니 모르는 게 없었다. 시국과 관련한 거대담론에서 잡다한 세상살이까지, 줄줄 꿰었다. 젊은이 감각을 못따라가겠다는 안타까움이 아니라 “너희와 같이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모임이 끝난 뒤 슬며시 물어봤다.“나이가 들어가는데 그냥 처져 있는 게 싫어서 와인 공부 좀 했지. 시간과 돈을 꽤 투자한 거야.” 집에서는 자식들과 대화하기 위해 코미디 프로를 일부러 챙겨 본다고 했다.
언론계 대선배 몇분을 만났다. 일흔을 넘긴 원로들이었다.“요즘은 TV광고를 봐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어.” 감각적이고 표피적인 세태를 꼬집으려나 생각했다. 하지만 말씀을 들어보니 모르는 게 없었다. 시국과 관련한 거대담론에서 잡다한 세상살이까지, 줄줄 꿰었다. 젊은이 감각을 못따라가겠다는 안타까움이 아니라 “너희와 같이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2006-12-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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