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원 수석 논설위원
한국영화는 올해 잇따라 대박을 터뜨렸다. 그 결과 한국영화 역대 흥행순위 10위 안에 새로 4편을 올려놓았다. 대박 행진은 ‘왕의 남자’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연말 개봉한 이 영화는 올 4월까지 모두 1230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종전 흥행 1위인 ‘태극기 휘날리며’의 기록, 영화인들조차 한동안 깨지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숫자 1174만명을 불과 2년만에 뛰어넘은 것이다.
그러나 ‘왕의 남자’의 영광은 길지 않았다. 여름방학 시즌에 개봉한 ‘괴물’이 그 기록을 가뿐히 제치면서 1300만 관객 시대를 열었다.‘왕의 남자’가 신기록을 세우는 데 112일 걸린 반면 ‘괴물’은 38일만에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이 영화는 경이로운 관객동원의 힘을 보여주었다.
‘괴물’‘왕의 남자’‘타짜’처럼 화려한 조명을 받진 못했지만 설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투사부일체’ 또한 610만명을 동원해 역대 9위에 올라섰다.‘투사부일체’의 성적은 코미디 영화로서는 사상 최고이다.
한 해에 개봉한 영화가 역대 흥행순위 10위 안에 넷씩이나 자리잡는 일은, 예전엔 물론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일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한국영화의 활력은 현재 최고조에 달해 있다. 그리고 그 활력을 이끄는 것은 영화의 높은 완성도이고, 그 완성도는 장르적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더욱 빛을 발한다.
먼저 ‘왕의 남자’를 보자.‘왕의 남자’는 흥행에 생태적 제약이 있다는 사극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조선조 연산군 시대를 무대로 하면서도 현대인이 공감하는 인간관계의 애증, 무자비한 권력과 그에 대한 저항 등 다양한 코드를 갖추었다. 거기에 탄탄한 연출, 배우들의 열연, 관객에게 지적인 만족감까지 선사하는 시나리오가 조화를 이뤄 대여섯번 보았다는 마니아 층을 형성했다.
‘괴물’은 외형상 괴수영화이다. 따라서 관객이 원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공포이다. 그렇지만 막상 관객 눈 앞에 펼쳐진 영화 ‘괴물’에는 공포말고도 가족사랑, 나아가 인간사랑이 있고 환경오염에 대한 경고가 있고 권력에 대한 조롱이 있다. 심지어는 반미영화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그래서 ‘괴물’은 국내외 평단이 인정하듯이 괴수영화 장르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한 수작이자, 가족영화·풍자영화가 된 것이다.
‘타짜’ 역시 도박꾼들의 세계와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도박에 으레 따르기 마련인 섹스·폭력·배신 등을 과감하게 담아냈다. 액션 누아르의 멋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이 영화는, 청소년 관객을 포기한 대신 성인 관객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재미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제공한다.
한국영화는 힘이 세다. 영화 감상이라면 집에서 TV의 주말영화나 비디오로 만족하던 중장년층을, 한국영화는 이제 주말마다 영화관으로 이끌어낸다. 지금은 11월 초, 올해는 아직도 두달 남았다. 해를 넘기기 전에 어느 영화가 또 혜성같이 등장해 역대 흥행순위를 뒤집어 놓을지, 우리는 그같은 반란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린다. 한국영화 만만세다.
이용원 수석 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6-11-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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