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미터법/ 우득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미터법/ 우득정 논설위원

우득정 기자
입력 2006-10-24 00:00
수정 2006-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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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자원부 관료들이 똑똑해졌다.”잘난 체하기로 유명한 재정경제부 관리들의 평이다. 과거 상공부 시절 업계에 휘두르던 인·허가권이 규제 완화 차원에서 모두 날아간 뒤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 머리를 굴리다 보니 눈에 광채를 띠게 됐다는 것이다. 산자부가 내년 7월부터 ‘평’‘돈’‘근’ 등 비법정 계량단위를 사용하거나 광고하는 업소에 대해 5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것도 새로운 먹을거리 발굴 사례로 꼽아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1964년부터 ‘계량 및 측정에 관한 법률’(일명 미터법)을 시행한 이래 1983년에는 건물과 토지도 ‘평’ 대신 ‘㎡’를 사용토록 했다.2000년에 전면 개정된 ‘계량에 관한 법률’ 33조에 따르면 비법정 계량단위를 제품에 표기하거나 광고 문구에 사용하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토록 돼 있다. 지금까지 법률을 만들어 놓고 거들떠보지 않다가 일제 단속에 나서겠다고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게다가 김종갑 산자부 제1차관은 비법정 계량과 법정계량 사이에 1%만 차이가 나도 소비자 손실은 2조 7000억원에 이른다고 엄포를 놓았으니 그동안 산자부의 직무태만으로 인한 소비자의 손실부터 먼저 보상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30여년 전에도 ‘말’‘되’ 등 비법정 계량단위를 사용하면 처벌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가 미터법에 생소한 재래시장 상인들과 소비자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후 ‘말’이나 ‘되’ 대신 10㎏,20㎏ 단위로 유통이 늘어나면서 ‘말’과 ‘되’는 절로 소멸의 길을 걸었다. 요즘 정육점에서도 ‘근’ 대신 ‘㎏’이 더 익숙하게 사용된다.1억 2500만달러짜리 우주선이 계량단위 착오로 화성 상공에서 폭발했다거나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기계톱’으로 불리던 MG42 기관총의 복제 실패 등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소비자가 편리하다고 인식하면 법정 계량단위는 절로 정착된다.34평보다 112㎡가 더 편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평’ 대신 ‘㎡’를 쓰게 하려면 공공부문 공급주택부터 100㎡,150㎡로 바꾸어야 하고, 건축단가도 ㎡단위로 새로 고시해야 한다. 자기 할 일부터 한 뒤 단속에 나서라는 얘기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2006-10-2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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