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종교적인 신념과 정치적인 목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중동 지역은 근 70년간 전쟁의 참화 속에 놓여 있습니다.
전쟁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희생자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특히 자신을 보호하는 데에 무기력한 어린아이와 부녀자가 대부분인 점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종교적인 목적이 박애와 자비, 그리고 사랑으로 화해하고 용서하면서 지구라는 공동체 안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케 하는 것이라면, 이번 레바논과 이스라엘간의 전쟁은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또 다른 만행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동지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다종교 사회이면서도 종교의 다원성이라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헌법에 의하여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신앙할 수 있으며,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종교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 천도교, 원불교, 유교, 대종교 등을 비롯하여 소규모의 종파들이 혼재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종교의 다원성을 인정하며 이웃 종교에 대한 화해와 대화 속에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모습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극히 일부 광신도들에 의하여 실망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만 그것이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종교간의 화해와 대화라는 우리 사회의 성숙된 종교적 풍토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광복 이후 일부 종단이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 왔으면서도 도덕적·윤리적으로 우리 사회를 위해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종교의 역할은 한마디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며 낮은 곳에서 희생과 봉사정신을 발휘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정화되고 투명한 사회를 이룩하여야 하는데 갈수록 세상이 왜 이처럼 혼탁해지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중론입니다. 거리마다 보이는 수많은 십자가나 산중 도처에 있는 사찰이나 암자를 볼 때마다 우리 사회는 당연히 도덕적이며 투명한 사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탐욕, 갈등, 반목, 살인, 증오, 독선과 아집, 극단적 이기주의, 사기 등이 종교의 이름으로 버젓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태는 종교가 오히려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지탄을 받게 합니다.
교단의 대형화는 자기오만과 이웃 종교에 대한 배타적 신앙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제 종교계가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것은 저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은 종교인으로서 참 모습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종교인들은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가 가르치는 순기능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늘 참회하고 반성하며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바탕에 두고 정진해나갈 때 나와 내 이웃은 정화될 것이고 세상은 한층 더 밝아질 것입니다.
천도교의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 선생은 ‘대인접물’ 법설에서 “한 사람이 화해짐에 한 집안이 화해지고 한 집안이 화해짐에 한 나라가 화해지고 한 나라가 화해짐에 천하가 같이 화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이처럼 혼탁하고 더럽혀진 것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며 바로 일반 대중을 바르게 교화하지 못한 우리 종교인 각자의 책임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종교인과 종교계는 자체정화를 위해서 뼈를 깎는 고통과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종교계의 위상이 재정립될 것이며, 비로소 건전하고 밝은 도덕사회는 약속될 것입니다.
오훈동 천도교 종학대학원 교무처장
전쟁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희생자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특히 자신을 보호하는 데에 무기력한 어린아이와 부녀자가 대부분인 점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종교적인 목적이 박애와 자비, 그리고 사랑으로 화해하고 용서하면서 지구라는 공동체 안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케 하는 것이라면, 이번 레바논과 이스라엘간의 전쟁은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또 다른 만행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동지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다종교 사회이면서도 종교의 다원성이라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헌법에 의하여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신앙할 수 있으며,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종교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 천도교, 원불교, 유교, 대종교 등을 비롯하여 소규모의 종파들이 혼재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종교의 다원성을 인정하며 이웃 종교에 대한 화해와 대화 속에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모습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극히 일부 광신도들에 의하여 실망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만 그것이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종교간의 화해와 대화라는 우리 사회의 성숙된 종교적 풍토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광복 이후 일부 종단이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 왔으면서도 도덕적·윤리적으로 우리 사회를 위해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종교의 역할은 한마디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며 낮은 곳에서 희생과 봉사정신을 발휘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정화되고 투명한 사회를 이룩하여야 하는데 갈수록 세상이 왜 이처럼 혼탁해지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중론입니다. 거리마다 보이는 수많은 십자가나 산중 도처에 있는 사찰이나 암자를 볼 때마다 우리 사회는 당연히 도덕적이며 투명한 사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탐욕, 갈등, 반목, 살인, 증오, 독선과 아집, 극단적 이기주의, 사기 등이 종교의 이름으로 버젓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태는 종교가 오히려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지탄을 받게 합니다.
교단의 대형화는 자기오만과 이웃 종교에 대한 배타적 신앙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제 종교계가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것은 저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은 종교인으로서 참 모습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종교인들은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가 가르치는 순기능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늘 참회하고 반성하며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바탕에 두고 정진해나갈 때 나와 내 이웃은 정화될 것이고 세상은 한층 더 밝아질 것입니다.
천도교의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 선생은 ‘대인접물’ 법설에서 “한 사람이 화해짐에 한 집안이 화해지고 한 집안이 화해짐에 한 나라가 화해지고 한 나라가 화해짐에 천하가 같이 화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이처럼 혼탁하고 더럽혀진 것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며 바로 일반 대중을 바르게 교화하지 못한 우리 종교인 각자의 책임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종교인과 종교계는 자체정화를 위해서 뼈를 깎는 고통과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종교계의 위상이 재정립될 것이며, 비로소 건전하고 밝은 도덕사회는 약속될 것입니다.
오훈동 천도교 종학대학원 교무처장
2006-08-0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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