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시에스타/황진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시에스타/황진선 논설위원

황진선 기자
입력 2006-08-02 00:00
수정 2006-08-02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10여년전에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지중해 연안 국가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처음 한낮에 낮잠을 즐기는 시에스타(siesta)를 접했다. 특히 그리스가 시에스타를 철저히 지키는 것 같았다.

당시 아테네에 머물렀는데, 관공서는 물론 상점도 대낮에 문을 닫았다. 대신 술집은 밤 늦게까지 흥청댔다. 젊은이들은 새벽2시가 넘어서야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갔다. 그렇게 시에스타를 접하면서 세계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국민소득이 프랑스와 독일 등 중·북부 유럽국가에 뒤지게 된 것은 시에스타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요즘에는 이들 국가에서도 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하여 시에스타에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대에 2시간씩 낮잠을 즐기면서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이기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의견이 더 많다. 과학적인 연구결과에 따르면 시에스타는 생물학적인 필요에 의해 생겼다는 것이다. 또한 경제적인 보상이나 풍요보다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소중한 풍습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엊그제 영국 레스터대학 에이드리언 화이트 교수가 건강, 교육, 재산 등을 토대로 만들어 발표한 ‘행복지도’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 178개 국가 중 102위였다. 미국은 23위, 영국은 35위, 프랑스 62위, 일본 90위였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 그대로 행복은 국력이나 국민소득 순이 아니었다.

소방방재청이 건설·산업현장 근로자들에게 낮잠을 권장하는 한국형 시에스타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한다. 폭염 주의보와 경보도 발령할 계획이다. 여름철 폭염으로 집중도가 떨어지면 사고의 위험이 높으므로 이를 방지하자는 취지다. 산업재해 없는 기업, 재난 없는 사회의 실현은 모든 국가의 중요한 정책 목표다. 그런 만큼 한국형 시에스타는 필요하다.30분∼1시간 정도의 토막잠은 생산성을 높인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기후는 점차 아열대성으로 변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도 무한 경쟁의 속도전에서 벗어나 삶을 조금씩이나마 즐길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2006-08-02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