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몽당연필/이용원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몽당연필/이용원 수석논설위원

입력 2006-07-24 00:00
수정 2006-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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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헤어져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너 몽당연필이여. 처음 너를 만난 날 늘씬한 몸매에, 손에 꼭 잡히는 느낌이 참으로 좋았지. 그런데 나와 지낸 세월이 길어지면서 네 키는 점점 줄어들어, 지금은 손가락을 오그리고야 겨우 품을 수 있게 되었구나.

연필깎이가 네 몸뚱어리를 뭉텅뭉텅 잘라내는 게 안타까워 한동안 내 직접 네 몸을 다듬기도 했지. 너와 더 오래 지내고 싶어서, 머리를 깎아 길다란 모자를 씌울 생각도 해 보았다. 나 어렸을 적에는 연필이 작아지면 볼펜 껍데기에 끼워 쓰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바로 포기했다. 어차피 이별할 날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네 몸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붙잡는 것이 꼭 옳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 또한 있는 법. 너 또한 내 곁을 떠난다만 아주 가지는 않는 것이다. 내 아끼는 여러 책 속에 네 발자취는 그대로 남을 테니까. 아니, 사실은 내 머리에, 내 가슴에 오래도록 살아 숨 쉴 것이다. 고마웠다, 몽당연필이여.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6-07-2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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